[사설]아동성범죄 잠시 개탄만 하면 예방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9일 03시 00분


지난해 나영이 사건이 아직도 생생한데 중학교에 진학할 꿈에 부풀었던 초등학생이 악독한 성범죄의 희생양이 됐다. 흉악 범죄로부터 어린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 무겁다. 6일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된 이유리 양 사건은 성범죄자 감시시스템이 작동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범죄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경찰은 범인을 조속히 검거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범인 김길태는 1997년 9세 어린이 성폭행 미수를 시작으로 2001년 30대 여성을 감금 폭행해 복역한 뒤 지난해 6월 출소했다. 만일 그가 신상정보 열람, 전자발찌 착용, 경찰의 ‘1대1 전담관리’ 등 성범죄자 관리시스템의 적용을 받았다면 재범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2008년 도입된 전자발찌 제도 이전에 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전자발찌를 착용하지도 않았고, 과거에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어서 신상정보 공개대상도 아니었다. 이런 제도적 허점을 뚫고 그 같은 성범죄자가 어린 소녀를 성폭행하고 생명까지 앗아간 것이다.

성범죄는 재범률이 높은 범죄다. 미국의 경우 성범죄자는 출소 후 25년 동안 약 40%가 재범을 저지르고 아동 성범죄 재범률은 52%로 더 높다. 그 때문에 이중처벌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범죄자는 출소 후에도 신상이 공개되고 거주지역을 제한받는다. 우리나라도 아동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가 도입됐으나 열람절차가 까다로워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나영이 사건을 계기로 온 나라가 법석을 떨며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예방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올해 1월 1일부터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인터넷으로 공개하고 있으나 금년 형 확정자부터 대상이다. 국회에서는 아동 성폭력과 관련해 40여 개 법안이 제출됐는데도 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만 처리됐다. 우편으로 성범죄자 거주 및 복역현황 등을 피해자 및 그 주변 지역 거주자에게 알려주는 내용의 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한 나머지 법안은 소관 상임위나 법사위에서 잠자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를 보호하는 법안이 후순위로 밀리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외치는 민생정치는 공허하다. 아동 성범죄를 우리 사회에서 추방하기 위한 근원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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