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 신세대 ‘세계의 벽’ 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8일 03시 00분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코리아의 축제다.” 세계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를 모두 석권한 한국에 외신은 이처럼 놀라움과 찬탄을 쏟아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 모태범과 여자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남자 5000m에서 장거리 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딴 이승훈은 한국체육대 2007학번 동기들이다. 올림픽 역사를 새로 쓴 젊은이들을 가졌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자 희망이다.

아주 짧은 시간을 흔히 ‘눈 깜짝할 사이’라고 표현한다. 이상화와 세계신기록 보유자 예니 볼프(독일)의 메달 색깔을 가른 0.05초는 거리로는 스케이트 날 하나 정도이고 시간으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를 다시 몇으로 쪼갠 찰나다. 이 엄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반 발자국 앞서기 위해 피를 말리는 선수들의 경쟁은 그 자체로 가슴 짜릿한 감동을 주는 예술이다. 누가 경쟁이 인간의 심성을 황폐화한다고 말하는가. 무한을 향한 경쟁과 도전은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며, 인류를 발전시키는 동력임을 웅변해준 경기였다.

한국의 메달 행진이 주력 종목인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온 것은 우리의 국력과 선수들의 체력이 그만큼 신장한 결과다. 기록경기인 스피드스케이팅은 선수들의 고독한 싸움이다. 이상화 선수는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투지를 불사르며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 스피드스케이팅 선진국의 두꺼운 벽을 깬 선수들이 장하고 자랑스럽다.

철저한 경기분석과 과학적 훈련도 주효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일찌감치 캐나다 캘거리와 밴쿠버로 이동해 현지적응과 더불어 빙질(氷質) 분석에 만전을 기했다. 경기장의 빙질과 온도에 맞추어 스케이트 날을 가는 전문가까지 투입했다. 이 때문에 외국 선수들이 “최악의 빙질”이라고 불평했던 경기장에 대해 우리 선수들은 “내게 딱 맞는 빙질”이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선수들은 우리 신세대가 결코 허약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신세대는 배가 고파서 혹은 억지로 시켜서 운동하는 세대가 아니다. 스스로 꿈을 세우고 땀으로 실천하는 젊은이들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어렸을 때 미셸 콴 선수를 역할모델로 삼아 인고의 노력을 통해 미셸 콴을 뛰어넘는 선수가 된 것을 보라. 밴쿠버에서 승전보를 보내온 우리 선수들은 메달 중압감에 짓눌려 평소 실력 발휘도 못하던 과거 세대가 아니다. 이들은 경기 자체를 즐기며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감을 타고 스퍼트를 폭발시킬 줄 안다.

우리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수립한 ‘겨울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가 평창 올림픽 유치에도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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