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한복을 입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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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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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 이동식 그림 제공 포털아트
환희. 이동식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린 시절, 설날이 되면 어른들은 대부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울긋불긋한 한복의 율동이 온 동네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어른들이 한복을 입고 널뛰기를 하고 제기를 차고 윷놀이를 하는 게 참 보기 좋았습니다. 형편이 좋은 집은 아이들에게도 한복을 입혀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의 설빔이나 아이들의 때때옷 꼬까신은 모두 한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복으로 시작해서 한복으로 끝나던 어린 시절의 까치설날은 아득한 옛날 풍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설날이 되어도 한복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개량 한복이 나오고 파리와 뉴욕에서 한복의 특성을 살린 패션쇼가 열린다고 하지만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와 정신을 담고 있는 전통 한복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아득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현란한 디지털 문명을 누리며 사는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으라고 하면 기겁을 하며 꽁무니를 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편한 옷, 세련된 옷에 길들어 한복을 거추장스러운 옷으로 여기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통 한복은 사극에 남고 전통 공연에 남고 역사책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가끔 우리가 즐겨 입고 사는 옷에 대해 생각합니다. 양복 청바지 와이셔츠 티셔츠 블라우스 니트 같은 것을 우리는 주로 입고 삽니다. 그것은 모두 우리 고유 전통과 무관한 의상입니다. 입기 편하고 멋 내기 좋다는 이유, 그리고 유행을 따라가며 변화를 가미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입고 또한 길든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무감각해진 의상 습관 속에서 아주 가끔 깊은 단절과 상실의 기운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나를 길들이고 세뇌시켜 입힌 옷을 아무런 자각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입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선뜩한 자각!

한복은 함부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이뿐만 아니라 함부로 무시하고 함부로 홀대할 수 있는 옷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역사와 애환이 알알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복은 서양 옷처럼 아무렇게나 걸치고 팽개칠 수 있는 옷이 아니고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며 입고 벗어야 하는 옷입니다. 요컨대 한복은 정신으로 입고 정신으로 벗는 전통 계승의 상징입니다.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는 세상, 편리한 것과 편의적인 것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복의 가치는 단순한 의상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한복은 입체적인 서양 옷과 달리 평면적인 특성이 강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입고 나면 의상의 선과 주름이 전체적인 볼륨과 함께 살아나 놀랍도록 풍성하고 화사한 느낌을 줍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우러난 빛깔까지 어우러져 세계 어느 나라의 전통 복장보다도 섬세하고 개성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21세기, 국적 불명의 옷을 벗어던지고 한복을 차려입고 활동하는 멋진 한국인의 초상을 그려봅니다. 우리가 외면하는 한복, 첨단 감각이 깃든 세계 최고의 브랜드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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