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훈]세계의 힘 ‘東亞’로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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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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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초 호주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다녀왔다. 호주 총리가 제안한 ‘아시아태평양공동체(APC)’의 타당성과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약 30개국에서 150명 정도를 초청한 호주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전개되는 미래질서에 관한 논의에서 호주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유럽에서 기원한 나라이지만 지역적으로, 그리고 통상관계에서 동아시아와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이어서인지 동아시아 질서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태지역에는 올해로 창설 20주년을 맞이한 아태경제협력체(APEC)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협력체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은 많은 동아시아 국가가 역내외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한편 동아시아 국가가 참여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 협력체제를 운영하는 등 동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지역주의 흐름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지역통합에 거의 관심을 쏟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지역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러시아는 호흡을 같이하거나 참여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2005년 출범한 동아시아정상회의(EAS)는 동아시아 국가 외에도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회원국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각국 지역협력체 구축… 주도권 경쟁

최근 2, 3년 사이에는 지역 협력체제의 구축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각국이 앞 다퉈 발표했다. 호주의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구상, 일본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동아시아공동체(EAC) 구상이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도 3월 ‘신아시아 외교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이런 제안이 복잡다단해지는 아시아의 미래질서 구축 과정에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판도변화는 우리나라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환경변화임에 틀림없다.

향후의 변화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동아시아의 질서 형성은 장기적인 안목과 고도의 통상·외교적 정책감각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준비해야 한다. 우선 통상정책과 외교안보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함께 두 정책을 두루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방향의 수립이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이 커다란 차이를 두고 선두에 있던 1970, 80년대와 달리 지난 수년간 중국 유럽연합(EU) 아세안 일본 미국이 우리나라의 무역상대국 1∼5위를 차지한다.

무역관계의 우선순위에서는 점차 뒤로 밀리지만 외교안보 면에서 미국과 EU는 우리에게 여전히 매우 중요한 협력파트너임에 틀림없다. 남북분단이 지속되는 우리에게는 안보 및 경제협력 파트너로서의 미국이 주는 의미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우리나라에 대한 최대의 직접투자국 위치를 차지하는 EU도 세력균형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아시아 지역 거버넌스 논의에서도 이들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질서 구축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 내에서의 질서 구축 움직임과 함께 다른 지역과의 협력관계에 관심을 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및 이에 기초한 전향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중국 일본 동남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는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전체 무역관계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파트너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체결하였거나 협상 중인 자유무역협정의 상당수가 역외국과의 협정이라는 사실은 정책과 현실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역사, 역사교과서, 영토분쟁 등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본 중국과의 통상·외교관계 강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 왔는지 우리의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전후의 유럽질서 형성을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당시 유럽 지성인의 고뇌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필자가 주선했던 인터뷰에서 동북아 지역질서에 관해 식견을 밝히던 중 “유럽통합의 성공은 프랑스가 먼저 독일에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파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한마디는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국운 건 ‘신아시아 외교’ 철저 준비를

셋째, 앞의 두 가지 준비와 아울러 현 정부가 추구하는 ‘신아시아 외교정책’의 세부적 실천방안을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각종 제안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과 전략적 기조가 무엇인지, 또 선호하는 제안에 대한 중장기적인 목표의식 및 로드맵은 어떠한지를 포함해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비로소 우리가 위치한 동아시아 및 아시아태평양의 판도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EU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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