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사교육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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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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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외국어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학원수강 등 사교육 경험이 있는지를 입학서류에 기재하는 방안을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고 있다. 학습계획서와 학교장추천서에 어디에서 공부했는지,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 경험이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항목을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외고 개편에도 불구하고 입학사정관 컨설팅 등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자 사교육 경험 유무를 기재토록 해 ‘사교육 포기’를 유도하려는 의도이다.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5월 전국 30개 외고 학생 28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학 전 특목고 대비 학원을 다닌 학생이 84.4%, 서울권 외고 학생들은 94.6%였다. 해외체류 경험은 사교육으로 봐야 할 것인가, 공교육으로 봐야 할 것인가. 외고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학생이 사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입학서류에 사교육 유무를 적으라는 것은 학생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세계의 조롱거리가 됨 직하다.

▷외고는 지금까지 정규 교과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입시문제를 냈기 때문에 학원을 안 다니고 외고에 가는 학생이 있다면 천재이거나 거짓말쟁이일 개연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특목고 학원을 다닌 사실을 솔직히 기재하자니 전형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고, 거짓말을 하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학생이 거짓 기재를 했더라도 입학사정관이 진실을 가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사교육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놀러 다니는 것은 괜찮고, 공부하러 학원에 간 학생은 죄인 취급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

▷특목고 학원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서 합격한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고 해보자. 당장 학원에 다닌 사실을 고백해 불이익을 당한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만일 합격한 학생이 떨어진 학생의 고발로 특목고 학원에 다녔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면 퇴학처분을 할 것인가. 외고는 내년부터 전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알고 싶다면 면접과정의 질문으로도 충분할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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