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덕영]학생과 기업에 불신받는 한국정치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를 막는다며 해머를 동원해 우리 국회는 ‘폭력 국회’란 오명을 듣고 있다. 1년이 지난 요즘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4대강 사업 예산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 치 양보 없이 격돌하면서 새해 예산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런 모습을 계속 봐온 학생들은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청주 서원대 손경애 교수팀이 전국 초중고교 및 대학교 학생 4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국회의원이 선거 때 내건 공약을 당선 이후 지키려 노력하느냐’는 질문에 ‘정말 그렇다’ 또는 ‘대체로 그렇다’ 등 긍정적 답변을 한 비율이 전체의 9.2%에 불과했다. 반면 ‘전혀 그렇지 않다’거나 ‘대체로 그렇지 않다’ 등 부정적 답변은 62.4%에 이르렀다. 또 ‘대통령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부정적 답변이 49.3%로 긍정적 대답(15.5%)보다 훨씬 많았다. ‘정당이 국가 정책에 국민의 뜻이 반영되도록 노력하느냐’는 질문에도 부정적 응답(44.8%)이 긍정적 대답(15.1%)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입법·사법·행정부, 정당, 언론 등 9가지 민주주의 제도적 장치 중에서 학생들은 정치 영역에 유독 심각한 불신을 나타냈다. 9개 영역을 5점 척도로 점수화한 결과 시민단체(3.22점)와 법관(2.93점)은 상대적으로 신뢰를 받은 반면 정당(2.58점) 대통령(2.46점) 국회의원(2.23점) 등은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기업들도 여야 간 정치적 대립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매출액 상위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사회 갈등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심각한 갈등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63.7%가 ‘정치·이념 대립’을 꼽았다. 빈부격차(24.9%) 노사대립 심화(11.3%)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치이념 대립으로 인해 매출 감소, 기업이미지 추락, 설비투자 및 신규 사업 진출 포기 등을 걱정할 정도였다.

학생들에게 정치인은 못 믿을 존재가 돼 버렸다. 기업들은 정치적 대립이 경제활동의 발목을 잡는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주주의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해머 동원, 회의장 점거는 답이 아니다. 힘의 논리만 앞세우는 것도 옳지 않다. 정치인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학생들의 신뢰를 얻고, 기업의 불안감도 해소할 수 있다.

유덕영 사회부 fir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