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힐러리 스텝과 오은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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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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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진 한 장이 있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왼발을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영국, 네팔, 인도와 유엔기를 동여맨 피켈을 들었다.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 정상 사진이다. 반면 에드먼드 힐러리는 자신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텐징에게 카메라 작동법을 가르쳐주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군색한 변명이 나왔다.

과연 누가 먼저 올랐을까. 힐러리의 사진이 없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은 이어졌지만 침묵은 계속됐다. 어찌됐든 뉴질랜드 출신 힐러리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슈퍼 히어로가 됐다. 반면 문맹인 데다 국적조차 불분명했던 텐징은 훈장 중에서도 2등급인 조지 십자훈장에 그쳤다.

본래 이름이 초모랑마(세상의 어머니)인 에베레스트는 첫 등정 시도 후 33년 만인 1953년에야 인간의 발길을 허락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흐른 1999년 80세의 힐러리 경은 회고록 ‘정상에서의 풍경’을 통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다섯 살 연상인 텐징이 사망한 지 이미 13년이 지난 뒤였다. “진정한 영웅은 텐징이다. 나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30분이나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영광을 양보했다. 텐징은 ‘셰르파인 나는 언제라도 정상을 밟을 수 있다. 당신에게는 이 순간이 다시 오기 힘든 소중한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텐징이 기다린 곳은 정상 바로 밑 12m 지점. 나중에 ‘힐러리 스텝’이라 이름 붙여진, 에베레스트의 마지막 관문인 수직 빙벽 앞이었다. 텐징은 체력이 바닥난 힐러리를 생명줄로 등 뒤에 단단히 연결한 뒤 표범처럼 날렵하게 빙벽을 올랐다. 네팔과 인도에서 힐러리 스텝을 ‘텐징의 등’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힐러리 경이 먼저 오른 데 대해선 이제 논란의 여지가 없어졌지만 어떤가. 지난해 초 사망한 그가 55년간 누린 영광은 너무 과분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산악인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힐러리 경은 이후 히말라야 고봉 10개를 더 올랐고, 1957년에는 썰매와 도보로 남극을 탐험했다. 1962년에는 셰르파를 돕기 위한 민간 재단인 히말라야 트러스트를 설립했다. 네팔에 학교 30여 개와 병원 2개, 보건소 15개를 지었으며 매년 100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1975년에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네팔로 향하던 아내와 딸을 비행기 사고로 한꺼번에 잃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텐징의 고향인 네팔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200m 앞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는 “산이 있어 그곳에 간다(Because it's there)”는 명언과 함께 “정상은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 전에는 진정으로 오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후배인 힐러리 경의 한평생을 몇 마디로 관통한 말이었다.

여성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안나푸르나만을 남겨둔 오은선 씨의 칸첸중가 등정 여부를 놓고 산악계가 시끄럽다. 앞만 보고 달려온 오 씨나 의혹을 제기하는 쪽이나 나름대로 명분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쪽 다 오르는 것만 생각했지, 내려오는 것을 깜박한 것은 아닌지. 힐러리 경은 에베레스트를 처음 올랐다는 사실보다 이후의 희생과 봉사로 더욱 추앙을 받았다. 오 씨에 대한 평가도 14좌 완등 이후에 내려질 것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j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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