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명균]축구공 같은 ‘구상성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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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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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의 시선은 2002년에 축구공을 쫓아다녔다. 우리 선수가 찬 축구공이 상대편 골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면서. 박지성 선수는 4강 진출을 이끄는 골을 넣어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박지성은 요즘도 영웅이다. 그가 한일 월드컵에서처럼 세계 최고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골이라도 더 넣기를 많은 이가 바란다. 박지성은 축구공의 마술사이다.

하늘에는 축구공처럼 보이는 천체가 있다. 박지성처럼 빛나는 별, 수십만 개의 별이 모여 축구공처럼 둥글게 보이는 천체가 구상성단이다. 망원경으로 찍은 구상성단의 사진을 보면 형형색색의 별이 모여 있어 아름답고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다. 구상성단은 나이가 대략 130억 년으로 우주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천체로 알려졌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므로 구상성단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우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같은 구상성단에 있는 별은 모두 동갑내기이다. 즉 밝은 별이나 어두운 별이나 모두 같은 때 태어났다. 밝은 별이 더 빨리 진화하여 어두운 별보다 밝게 보일 뿐이다. 같은 곳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별의 화학적 성분은 서로 비슷하여 단일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구상성단은 우주 곳곳에서 관측되지만 대부분 특성이 비슷하며 같은 때 태어났다.

구상성단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많이 진행돼 수많은 논문으로 발표됐다. 구상성단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아니 드러났다고 많은 천문학자가 믿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변혁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연구에 따라 외부 은하에 있는 구상성단의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구상성단이 모두 같은 때가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지난달에는 국내 천문학자(세종대 이재우 강영운 교수, 연세대 이영욱 교수)가 우리 은하의 구상성단에서 칼슘이 많은 별과 적은 별 두 종류가 있음을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구상성단의 별이 모두 같은 때 태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 다르다. 이런 구상성단은 보통의 구상성단이 아니라 사실은 왜소 은하의 잔재일 가능성이 있다. 원래는 훨씬 크고 무거웠던 왜소 은하가 자신이 가진 질량의 대부분을 일찍 잃어버리고 현재는 중심부만 남아 구상성단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구상성단에 대한 연구가 과거에 수없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새로운 비밀이 밝혀진다는 점은 신기하다. 더욱 신기한 점은 비밀이 밝혀지면서 구상성단의 정체가 명확하게 되지 않고 더욱더 이해하기 어려워지면서 구상성단의 비밀이 오리무중으로 빠진다는 사실이다. 구상성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오늘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앞 다퉈 연구하는 중이다.

앞으로 10년 후면 구경이 25m나 되는 마젤란 망원경이 완성돼 칠레에 설치된다. 국내 천문학자는 이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시간의 10%를 사용하므로 한국 천문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현재는 한국이 보유한 가장 큰 망원경의 구경이 1.8m에 불과하여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조차 없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니 정말로 대단하다. 우주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에서 최고로 좋은 거대 망원경을 국내 천문학자가 사용할 때쯤이면 구상성단의 진짜 정체를 밝히지 않을까? 그때쯤 한국이 월드컵 축구에서도 우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명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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