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정열]해단하자마자… 봉하마을 달려간 친일규명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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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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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아닌 국가기관 보고서 ‘부적절한 봉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성대경 위원장과 노경채 상임위원 등 위원회 관계자들이 28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바친 뒤 절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사람 사는 세상’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성대경 위원장과 노경채 상임위원 등 위원회 관계자들이 28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바친 뒤 절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사람 사는 세상’

27일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을 공개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 관계자들이 다음 날인 28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앞에서 헌화 참배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규명위 관계자들이 봉하마을을 찾은 사실과 사진 등을 올려놓았다. 이에 따르면 성대경 위원장과 노경채 상임위원, 김삼웅 위원 등은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총 2만1000여 쪽에 달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25권을 영전에 봉헌했다. 이 자리에서 성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계셨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묘역을 둘러본 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권양숙 여사를 접견한 자리에서도 성 위원장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대통령님 재임 중에 청와대에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 위원장들과 간담회를 가졌었는데 그때 대통령님께 드렸던 약속을 오늘 지키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권 여사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권 여사도 “대통령께서 보고서를 보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것 같다. 고생 많으셨다”고 말했다.

규명위 위원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하고 해단식을 가진 지 하루 만에 봉하마을로 내려간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공식 활동을 종료한 위원들이 어디를 방문할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시민단체도 아닌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인 규명위가 4년 6개월 동안 377억여 원에 달하는 국가예산을 들여 만든 보고서를 재임 기간 내내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바친 행동은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적절한 처사로 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진보연합 최진학 공동대표는 “규명위원들이 해단식 하루 만에 보고서를 들고 봉하마을을 찾은 것은 규명위의 활동이 순수한 과거사 규명 작업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과 궤를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2005년 4월 제정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규명위의 탄생에 노 전 대통령이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7일 규명위가 공개한 보고서에 수록된 축사에도 “노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취임하면 과거 청산을 해야겠으니 그때 도와 달라’고 말했다”는 강만길 전 규명위 위원장이 전하는 일화가 소개돼 있다.

이날 봉하마을을 찾았던 규명위의 한 위원은 27일 해단식에서 사무처 관계자들에게 “왕조실록을 만든 사관(史官)과 같은 역할을 했다”며 자화자찬했다. 이들이 과연 사관과 같은 공평무사한 역할을 했는지는 이번 봉하마을 방문에서 보여준 언행을 보면 짐작할 만하다.

우정열 사회부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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