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장규태]쐐기벌레 쌈 싸 먹는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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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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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 종(種)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인간도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 종의 하나이지만 다른 생물 종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인간문명의 발달로 인한 최소한의 개발은 어쩔 수 없는 통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적이고 성장 중심적인 개발로 인한 환경변화 및 동식물 서식지 파괴로 지구에 공존하는 생명체를 위협하는 행위가 늘어난다.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VHEM·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이라 불리는 움직임이 나올 정도이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원숭이가 열대우림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통해 지구라는 공생의 터전에서 인간의 역할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영장류 학자와 생태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원숭이는 한마디로 ‘밀림의 파수꾼’이다. 원숭이가 의지를 갖고 이런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삶 자체가 이런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원숭이는 나무열매를 섭취한 후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멀리 퍼뜨려 발아를 돕는다. 새가 주로 이런 역할을 한다고 알지만 새가 섭취하기에 큰 씨앗은 원숭이가 퍼뜨린다. 덩치가 큰 원숭이, 특히 오랑우탄은 웬만한 크기의 씨앗을 통째로 삼킬 수 있다. 배설물에 씨앗이 섞여서 땅에 떨어지면 맨땅에 떨어졌을 때보다 발아율이 훨씬 높다. 씨앗이 모체인 나무그늘에서 벗어나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이동하면 발아 성공률이 매우 높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껍질 자체가 너무 딱딱해서 영장류가 삼키고 소화한 뒤 배설물로 나와야만 바깥 껍질 부분이 부드러워져 정상적으로 발아되는 종류의 식물이 많다는 점이다. 100kg이 넘는 덩치 큰 영장류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먹고 소화시킨 뒤에 만드는 배설물은 영양가 높은 천연 비료나 마찬가지여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원숭이의 두 번째 역할은 해충 수의 조절이다. 열대우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고 나무를 위협하는 해충을 원숭이가 잡아먹음으로써 밀림을 지킨다. 이 역할 또한 새의 역할과 매우 유사한데 원숭이는 새보다 더 중요하다. 새는 특정 해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 해충은 새가 먹지 못한다. 쐐기벌레 유충의 경우는 튼튼한 보호막인 침이 있어 새가 선호하지 않는다. 원숭이는 인간이 쌈을 싸먹듯이 다른 나뭇잎을 이용해 쐐기벌레의 침을 피해서 나뭇잎으로 싸먹으므로 쐐기벌레와 같은 보호막을 가진 해충의 수를 효과적으로 조절한다. 싱싱한 과일이나 나뭇잎만 먹고 사는 줄 알았던 원숭이가 생태계 보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원숭이의 존재 자체가 삶의 터전인 밀림을 지키게끔 하는 친환경적 속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원숭이 중심의 생태계와 인간의 삶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답은 바로 조화(調和)이다. 원숭이는 열대우림이 허락하는 자원의 한도 내에서 자신만의 특유의 생활습관에 맞춰 살아간다. 인간이 지구를 개조하고 변환시켜서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지구에서의 조화로운 삶을 이야기하는 여러 운동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녹색운동과 같이 푸른 자연을 가꾸는 일도 이런 운동의 일환이다. 지구에서의 조화로운 삶은 어려운 것 같지만 실천은 매우 간단하다. 사무실에서의 간단한 이면지 활용은 열대우림을 보전할 수 있다.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다니는 작은 실천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일조한다. 일상의 작은 행동이 조화로운 삶의 시작이다.

장규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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