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연욱]결단은 銀, 설득은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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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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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여권 내부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 갈등이 잠시 수그러든 상태다. 한때 상대 진영을 향해 직설적으로 쏟아내던 험한 ‘막말’은 자취를 감춘 듯하다. 정부의 세종시 대안 제출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휴전하자”는 공감대가 모아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은 듯하다. 여권 주변에선 정부가 세종시 대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다음 달에 펼쳐질 국면을 앞두고 벌써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친이, 친박 진영 모두 세종시 정국에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의 칼을 뽑아놓고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곧바로 ‘레임덕(권력누수현상)’으로 들어가지 않겠느냐.”(친이 직계 A 중진의원)

“청와대가 세종시 원안 수정을 밀어붙이더라도 국회 의석 분포상 세종시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다.”(친박계 B 의원)

이런 불씨가 타오를 발화점은 곳곳에 널려 있다. 상대 진영에 대한 불신의 그늘이 아직도 걷히지 않은 만큼 사소한 언쟁이 언제든지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권 안팎에선 이를 두고 청와대 정무기능이 실종된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CEO형 리더십’이 모든 사안을 효율성의 잣대로 평가하고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비효율적이라고 치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권 주변에서 적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여러 사람의 이견을 절충해 수렴해가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민주주의 정치의 성패를 가르는 요체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옛말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있을까.

이와 관련해 여권 주류의 한 중진 의원이 던진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이 대통령이 사석에서 ‘박근혜 국무총리’ 카드를 꺼낸 적이 있었다. 일부 참석자도 ‘좋은 생각이십니다’라고 화답했다. 여권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박근혜 총리’ 카드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쪽을 잇는 정무라인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박 총리 카드는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여권의 갈등을 지켜보면 당시 실패가 더욱 아쉽다.”

정부가 다음 달에 세종시 대안을 내놓으면 이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설득에 나설 것이다. 그 첫 관문은 박 전 대표가 될 것이다. 여권 수뇌부는 가급적 ‘정치적 결단’이라는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 ‘결단’을 강조할 경우 대화와 설득은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 측이 친이 진영에 갖고 있는 불신의 깊이도 헤아리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표는 2004년 대선자금 검찰 수사로 뒤집어쓴 ‘차떼기당’의 오명을 벗기 위해 당명 개정 카드를 밀어붙였지만 당내 거센 반발에 부닥쳐 접은 적이 있다. 박 전 대표가 일방적 ‘외길’을 고집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친박 진영 일부에서도 “청와대와 정부의 대안 제시 후 대응을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박 전 대표를 상대로 펼칠 조정과 설득의 과정은 전 국민, 특히 충청인들이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세종시 정국을 이끄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조정과 설득의 과정은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제다.

정연욱 정치부 차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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