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백용호 국세청장, 賣官賣職과 부패 끝낼 의지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세무조사 대상 기업의 편의를 봐주고 재산상 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부인인 홍혜경 가인갤러리 대표가 “2007년 12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대구지방국세청장이던 남편에게 국세청 차장 자리를 제의하면서 3억 원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홍 씨는 “다음 해 3월에도 한 청장이 재차 3억 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홍 씨의 폭로성 발언이 남편의 구속 직후 터져 나와 신뢰에 의문이 가는 점도 있다. 한 전 청장은 3월 중순 미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해 실체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홍 씨의 발언은 구체성을 띠고 있다. 그는 심지어 “한 청장이 다른 지방 국세청장 두 분에게도 차장 자리를 제의해 경쟁을 시켰다”고 덧붙였다. 이 말대로라면 한 전 청장은 세 명을 대상으로 국세청 차장 자리를 입찰에 부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은 작년 2월 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도 부하 간부의 승진을 미끼로 돈을 요구한 매관매직(賣官賣職) 관행이 버젓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한 전 청장은 차장 시절인 2007년 3월 전군표 당시 청장에게 인사로비를 위해 시가 3000만 원 안팎의 그림 한 점을 선물했다는 의혹이 올해 1월 불거지자 사흘 만에 사의를 표했고 두 달 뒤 미국으로 출국했다. 2006년 부하에게서 인사 청탁 명목으로 현금 7000여만 원과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 사례도 있다. 한 전 청장이 ‘정권 실세에게 10억 원을 갖다 줘야 한다’고 말했다는 홍 씨의 폭로도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위로 뇌물을 바쳐 좋은 자리를 챙기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는 관행이 국세청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국가의 수치다.

1988년 이후 10명의 국세청장 가운데 6명이 구속되거나 추문에 휩싸여 퇴진했다. 국세청은 청장이 불명예 퇴진할 때마다 ‘이를 계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다짐을 했지만 이 사건을 보면 과연 국세청 물이 맑아질 날이 올 것인지 기약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세청 외부 출신인 백용호 현 청장은 고질적인 관행을 끊는 데 부담이 덜할 것이다. 그에게 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길 바란다. 검찰도 그림로비와 매관매직 의혹사건 수사를 즉각 재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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