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소연]‘행복한 옆집 누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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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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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러시아에서 외국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What’s your concept as a Korean astronaut(대한민국 우주인으로서 너의 콘셉트는 무엇이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비행을 준비하려고 러시아에서 훈련받으면서 했던 수많은 인터뷰에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질의서를 받아 보면 90% 이상이 과거에 받았던 질문이다. 그런 인터뷰에 익숙한 내게 꽤나 신선한 질문이었고, 바로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내 맘속에서 나오는 솔직한 대답이 질문을 하는 기자나 기사를 읽는 독자에게 최대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솔직한 대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은 “Hm… My concept is woman next door(음… 나의 콘셉트는 옆집 여자)”였다. 기자는 의외였는지 어떤 의미인지 되물었다. 내 대답은 그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옆집 누나, 옆집 언니, 옆집 여자아이, 뭐 그런 것이었다. 누구도 옆집 누나나 언니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날 TV에서 보고 깜짝 놀란 장미란 선수도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운동하는 옆집 누나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나와 나란히 한동네에서 살던 누군가가 전 세계를 들어올리는 영웅이 되리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눈부신 영웅 역시 평범한 이웃

언젠가 신문에서 사법시험에 나란히 합격한 부부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무언가 특별한 배경을 가졌거나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이라고 확신했던 나를 너무나 놀라게 했던 사실은 그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나와 함께 밤새 수다를 떨던 여자 친구, 나와 짝꿍을 했던 장난기 어린 친구였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자마자 전화를 했다. “야! 신문에 난 부부가 정말 너네 맞아? 세상에나…. 니들이 그럴 수 있단 말이야?”라고 물었다.

그런 특별한 일로 신문에 이름이 오르는 사람은 뭔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나도 모르게 단정지어 버렸기에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친구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 박혁거세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을 것만 같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자랐을 것 같은 사람일 수 있지만 원래는 모두가 우리의 옆집 언니, 옆집 형, 옆집에 살던 친구로부터 시작했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가 나를 펑펑 울게 만들었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나오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눈과 코가 빨갛게 변해버리도록 울었던 기억이 난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영화가 감동의 서사시나 드라마로 분류되지 않고 코미디라고 쓰인 ‘굿모닝 프레지던트’였다는 점이다. 누구도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의 대통령이 나의 옆집 아저씨나 아줌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들 역시도 우리 옆집 아저씨나 아줌마 중 하나임을 느끼게 했다. 특히 고두심 씨가 열연했던 한경자 대통령 부분에서는 시종일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대통령처럼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주비행을 하던 때, 매일 저녁 TV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던 내게, 그 역할은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위치에 있는 여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한경자 대통령이 주방장에게 “대통령은 불행해도 국민들을 행복하게는 할 수 있겠죠?”라고 묻자 “국민들은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대통령 또한 행복하길 바랍니다”라고 대답하며 행복하지 않은 대통령을 가진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 이후 수많은 일을 겪으며 문득문득 우주인은 불행해도 지켜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저 ‘우주에서 실험을 한다면, 한국에서 최초로 하는 우주실험에 내가 함께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만 하던, 그저 공학 공부를 하던 옆집 누나로 나는 우주인에 지원했었다. 우주에 있었던 행복감만큼이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주인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후의 일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우주인에 지원하고 비행을 위해 훈련했던 평범한 옆집 누나였던 내가 우주인으로서 부적당한 사람은 아니었는지, 과연 인간 이소연과 우주인 이소연, 둘 다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가 정답은 아니라 할지라도 대한민국 과학기술, 우주과학, 또 우주인을 지켜보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우주인으로서, 또 완벽하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이소연 역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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