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주수호]커지는 외과의 공백, 요원한 의료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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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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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산업화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전 세계가 경이롭게 지켜보는 현재까지의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이 일류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하다. 국제경쟁력이 충분한 국내 의료진 및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의료기관과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산업을 연계하여 의료를 산업화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추진하자는 정부의 목표 설정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산업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우수한 의료진 및 의료기관의 최첨단 시설을 충분히 활용해 해외 환자를 대거 유치해서 국부를 늘리고 고용창출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른 하나는 의료와 IT, BT산업을 접목해 획기적인 신약 및 의료기기 등을 개발하는 것이다.

의료산업화는 현 시점에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짧게는 수년 내, 멀게는 십수 년 내에 추진할 주체가 소진될지 모른다는 점이 문제다. 의료산업화를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든 우수한 의료진을 계속 배출한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의료계의 대표적인 ‘3D’ 분야인 외과 및 흉부외과는 전공의 수급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다. 심지어 흉부외과는 길게는 10년 가까이 신입 전공의를 한 명도 육성하지 못한 수련병원도 존재한다. 노·장년층 의사 은퇴 이후의 심각한 전문인력 부족 사태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위기는 외과나 흉부외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산부인과를 비롯하여 건강보험급여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소위 필수진료과 전체로 빠르게 확산된다는 점이다. 의료산업화의 필수 전제인, 중증질환을 주로 담당할 우수한 의료진이 부족한 상태에서 의료산업화는 불가능하다.

필수진료과의 몰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필수진료과의 몰락은 비단 의사의 몰락만이 아니라 의료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어느 정부도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심각성을 몰랐다면 무지의 소치이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국민, 특히 아주 가까운 후손에게 큰 빚을 떠넘기는 셈이다.

정부와 정치권 및 시민사회는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과정을 포함해 과도한 규제와 강제 일변도인 현재의 의료관련 법률을 최소한 대한민국 의사가 전문과목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한걸음씩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현재의 불합리한 의료관련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실천의지 없이는 지속 가능한 의료산업화가 불가능하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필수진료를 담당할 의사의 수적, 질적 저하를 막을 길이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이다.

주수호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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