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세균 대표의 脫이념 승부론과 憲裁불복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어제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며 “성찰 반성을 통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 보수 좌우의 이념논쟁을 초월해 국민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라면 과감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10·28 재·보궐선거에서 선전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번 ‘탈이념 실용노선’ 약속을 실행으로 옮기기를 기대한다.

그가 “내년 지방선거까지 6개월 동안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과 진검승부를 할 것”이라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이 이번 약속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전술적 선택일 수 있다. 특정 정당의 선거전략적 고려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정 대표는 올봄에도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 중심의 ‘뉴민주당 플랜’을 추진하려다가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잇단 서거 이후 당내 386 출신과 일부 친(親)노무현 세력에 떠밀려 강경투쟁 노선으로 회귀한 적이 있다. 정 대표가 강경 장외투쟁에 매달리는 내부의 수구적 ‘탈레반 세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당내 입지 확보에만 연연한다면 민주당은 지지기반 확대에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의 노선 변화는 헌법재판소가 ‘유효’라고 결정한 미디어관계법 수용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김형오 국회의장 사퇴 요구 같은 상투적 대응은 변화와 거리가 멀다. 김 의장은 민주당이 국회 표결을 반년 가까이 폭력적으로 가로막는 바람에 헌법상 다수결 원칙과 국회법에 따라 직권상정 절차를 밟았다.

헌재가 언급한 법안의 심의·표결권 침해도 따지고 보면 민주당의 의사진행 방해가 선행 원인이었다. 미디어법의 입법 절차에 부분적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법 전체가 무효라고 하는 것은 맥주 한잔만 마셔도 무조건 음주운전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술을 억지로 먹이다시피 한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민주당이 미디어법의 국회 표결에 대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놓고 정작 그 결과엔 불복하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기중심적 행태다. 정 대표가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미디어법 처리에 반발해 천정배 최문순 의원과 함께 김 의장에게 제출한 의원직 사퇴서부터 거둬들여야 한다. 사퇴서가 수리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버틴다면 이는 위선이다.

미디어산업을 육성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먹을거리를 키우는 것이 ‘국민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실용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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