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7% 성장 대신 국민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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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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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연말까지 ‘국민행복지수’를 만들겠다고 한다. 국내총생산(GDP)이 ‘삶의 질’을 알려주는 데 미흡하기 때문에 소득 고용 주거 교육 안전 등의 민생지표를 토대로 이를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에서 “개인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사회 발전의 척도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하루 전날인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서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747공약’(7%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 진입)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랬던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에서 최근 삶의 질 또는 복지를 강조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3, 4년 전에는 성장이 먼저냐 분배(복지)가 먼저냐, 미국식 발전모델이냐 유럽식 발전모델이냐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 격렬한 논쟁까지 벌어졌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성장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라도 이뤄졌는지 의아하다.

GDP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어제오늘 나온 지적이 아니다. 민간과 정부의 소비 지출, 투자 등을 합해 계산하는 GDP는 ‘시장가치’로 계산되기 때문에 한계를 지닌다. 가사노동이나 환경 같은,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 태풍으로 건물이 파괴되거나 성수대교가 무너진 뒤 새로 건설하면 GDP가 올라가는, 삶의 질과 모순되는 일도 생긴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와 제임스 토빈은 이미 수십 년 전에 GDP에 가사노동과 환경, 여가 등을 포함시킨 경제후생지표(MEW)를 제안했고, 폴 새뮤얼슨은 복지의 개념을 포함한 순경제후생(NEW)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GDP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를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에 개발된 GDP가 경제발전 지수의 황제 자리를 차지해온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나 행복을 보여주는 지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 영국 신경제재단(NEF)의 ‘국민행복지수’,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등 이미 차고도 넘친다. 그동안 정부가 정책을 입안할 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목메어 외치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까마득하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2%였고 올해는 간신히 마이너스를 벗어날까 말까 하는 정도다.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지만 중국 인도 등 우리보다 잘한 나라도 많다. 잠재성장률도 4∼5%대에서 올해 3%대로 뚝 떨어졌다. 1인당 국민소득은 다시 1만 달러대로 주저앉았고, 전체 경제규모도 2003년 세계 11위에서 2008년 15위로 내려갔다(이 모든 것이 GDP로 계산된다).

삶의 질 향상이 경제발전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민생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폄훼하려는 뜻도 없다. 하지만 GDP가 불완전 지수라는 새롭지도 않은 사실이 초라한 경제성적표를 합리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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