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훈]신종 플루보다 더 무서운 ‘불신 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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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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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나고 목이 아픈데 동네의원에서는 약을 처방해 주지 않고, 거점병원에 가라고만 합니다. 이래도 됩니까.”

“동네의원에서 약을 처방해 줄 텐데 무조건 거점병원으로만 몰리면 어떡합니까.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국민은 의사를, 의사는 국민을 비난하고 있다. 둘은 동시에 정부가 뭐하는 거냐고 따지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 공포가 확산되면서 만들어진 ‘불신 풍속도’다.

정부는 동네의원에서 약을 적극 처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이 이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 나중에 진료비 삭감을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한 의사는 “지금까지 정부가 의료계에 대해 말을 번복한 게 한두 번이냐”며 “이번에도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고 말했다.

거점병원이 중증환자 진료에 전념하도록 경증환자는 동네의원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이 역시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한 시민은 “확진 검사를 받아야 맘이 놓일 것 같아 거점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사무실 동료끼리 삼삼오오 검사를 받으려고 거점병원을 찾기도 한다. 정작 검사가 시급한 중증환자의 순서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타미플루를 사재기하겠다는 시민도 나오고 있다. 한 의사는 “의학적 판단에 따르면 일반 감기가 분명한데, 왜 타미플루를 처방해 주지 않느냐고 떼를 쓰는 사람도 많다”며 “타미플루가 동이 나기 전에 확보하겠다는 사람도 꽤 있다”고 말했다. 타미플루 부족 사태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3, 4회나 있었지만 믿지 않는 것이다.

백신 접종을 두고도 말이 많다. 백신을 접종하면 다 죽을 거라는 괴담이 유포되는가 하면 안전성이 검증되기 전에 정부가 무리하게 접종을 추진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임상시험 결과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정부 발표는 허공에 떠 버렸다.

불신이 커진 데는 정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 보건당국은 9월 정례 브리핑 때 “감염자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앞으로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의심환자가 즉각 약을 처방받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내성 부작용이 우려되고 약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항체가 생기는 12월부터 감염 속도는 둔화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도 믿지 못했던 10월을 반성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전망이 조금이라도 빗나간다면 불신의 벽은 더 공고해질 것이다. 신종 플루보다 ‘불신 플루’가 더 두려운 요즘이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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