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서비스는 도우미가 아니다

  • 입력 2009년 9월 21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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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생 조현정은 1983년 국내1호 대학생 벤처기업 ‘비트컴퓨터’를 세우고 사업자등록증을 받으러 세무서에 갔다. 세무서 직원은 “분류 기준이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서비스업의 ‘기타’에 넣어주었다. 소프트웨어개발업체들은 그 후 1997년까지 다른 서비스업과 마찬가지로 은행 대출은 구경도 못 했고 ‘창업 즉시 자금난’에 허덕였다.

서비스산업은 오랫동안 제조업의 도우미산업이나 부수적 산업으로 여겨졌다. 정부는 2001년 “제조업과 함께 경제의 양대 축인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제조업에 비해 불합리하게 차별적인 사항을 발굴해 개선해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합리적으로’ 차별받는 경우는 그냥 두겠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당시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54%, 취업자 비중이 63%였던 서비스산업으로선 이만저만한 푸대접이 아니었다.

상품 수출입과 달리 서비스 수출입의 불균형에 둔감한 가운데 서비스수지 적자는 지난 3년 동안에만 연평균 185억 달러를 기록했다. 적자의 주범으로 해외관광여행과 조기유학이 주로 거론됐지만 경기가 위축됐던 작년엔 여행부문 적자가 전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자 국제경쟁력이 미국 일본 유럽의 30∼40%로 평가되는 광고 컨설팅 등 사업서비스의 적자가 이 기간에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경제 덩치가 커지다보니 웬만해서는 한쪽이 좋아진다고 전체가 개선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서비스수지 적자가 쌓여가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과 일자리가 줄어 내수를 키울 필요가 커지자 정부는 서비스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올해만 해도 석 달이 멀다하고 대책들을 쏟아냈다. 전자회사의 연구소처럼 백화점의 유통연구소에도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겠다거나 지식서비스업체에도 병역특례 연구요원을 배치한다는 것 등이다. 서비스산업이 제조업과 비슷한 대접을 받기만 해도 다행이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시장참여자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시행방안을 마련 중인 건강관리서비스의 경우 서비스의 주체를 의사와 의료기관으로 한정할지, 더 넓힐지를 두고 논란이 이미 시작됐다. 정부가 기득권을 주장하는 업종단체의 영향을 받지 않고 관련 산업을 두루 키울 수 있는 미래형 제도를 출범시키는 게 중요하다. 복지부는 10월로 미뤄놓은 영리병원 허용에 관한 논의도 더 늦추지 말아야 한다.

더딘 법제화도 시장 확대의 걸림돌이다. 정보기술(IT)과 인터넷을 활용해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와 사후관리를 받는 u-헬스케어서비스는 이제 시범사업을 해보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2003년부터 공인돼 작년에만 3조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됐다. 국내에서도 일부 대형병원은 IT솔루션 업체와 손잡고 기반을 갖춰 가고 있는데 법적 근거가 없어 서비스 준비를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서비스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해진 이유 중 하나는 각종 진입규제다. 2007년 한국은행 조사로는 543개 서비스업종 중 67%에 법적 진입규제가 존재했다. 허가제나 독점 인정 등 진입규제가 심한 업종이 32%였다. 의료 법률 같은 서비스시장을 전문자격사인 의사 변호사가 독점하는 경우 혁신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기업이 커지려면 시장진입 문턱부터 낮춰야 한다. 아울러 서비스산업을 공공의 이익을 위한 도우미쯤으로 보는 사회인식도 바뀔 때가 됐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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