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기업이 부담스러운 존재인가

  • 입력 2009년 9월 17일 21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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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는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양국 재계를 대표하고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조사하고 수렴해서 정부에 건의하는 역할도 비슷하다. 회관을 신축하는 두 단체는 공교롭게도 요즘 두 나라 정부로부터 ‘부담스러운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다.

인기 좇다가 일자리 줄면 국가적 손해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유가와 관련해 해당 부처가 제출한 원가 구성 자료를 보고는 “업계에서 준 자료로 만든 것 아니냐”며 질책했다. “담합 사례가 있으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경고도 따랐다. 친서민 중도실용을 내건 직후인 7월 초에는 “기업이 정부 탓만 해선 안 된다”고 운을 떼더니 “금융위기는 경영인들이 윤리를 망각한 채 탐욕스럽고 무책임하게 경영을 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통령도, 한나라당의 정몽준 신임 대표도 대기업 총수들과의 면담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제 출범한 일본 하토야마(鳩山) 정권은 역대 경단련 회장들이 참석했던 경제재정자문회의를 폐지했다. 재계의 의견을 직접 전달하던 창구가 사라진 것이다. 일본 정부는 대신 국가전략국을 신설해 정책의 골격을 결정할 계획이다.

전경련이나 경단련이나 얼마 전까지는 정부와 밀월관계였다. 이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가 친서민으로 돌아섰고, 하토야마 정권은 자민당을 적극 지지했던 경단련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이 대통령이 친서민을 내건 뒤부터 지지율이 올랐다. 20%대까지 헤매던 지지율이 어느 덧 50%를 넘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지지율 상승과 함께 경제정책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멀어지고 있다.

재계는 세제개편을 앞두고 20년 이상 실시됐던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를 존속시켜 달라고 건의했으나 정부는 내년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작년에 투자금액의 10%를 법인세나 사업소득세에서 공제해준 덕분에 기업들은 2조1000억 원의 세금을 덜 냈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정부는 세수가 늘지만 투자도 일자리도 훨씬 더 감소할 것이다.

일본 재계도 발언권이 약해지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철강 전력 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2020년에 1990년 대비 25%를 삭감한다’며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놓고 재계와 환경단체가 맞서 정부의 정책 선택이 주목된다.

친서민 반(反)기업 정책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빈부(貧富)계층 편 가르기와 대기업 때리기로 재미를 봤다. 노사가 대립할 때는 무조건 노조 편을 들고 대기업을 비판하면 지지율이 높아졌다. 뿌리 깊은 반(反)부자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경련은 주눅이 들었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던 전경련 임원이 그만둔 일도 있다.

일자리 만들고 세금 낸 기업도 할 말해야

집권 이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선언했던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처럼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업인 출신인 이 대통령이 지지율에만 신경 쓰다 보면 이전처럼 친기업으로 돌아서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나친 기업 비판으로 기업의 본질을 왜곡하고 기업을 주눅 들게 하면 일자리를 잃는 국민만 손해다.

전경련도 이제 홀로 서기를 할 때다. 세금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을 대표해 발언권을 행사해야 한다. 정부가 잘못했을 때는 할 말을 하고 기업이 잘못했을 때는 과감하게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일본 경단련에 비하면 전경련은 침묵할 때가 많다. 대기업 총수들은 선거 때마다 손을 벌리는 정치권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다 번번이 사법처리됐다. 담합 혐의로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얻어맞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재계는 이젠 거절도 하고 항변도 할 필요가 있다. 전경련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자면 기업들이 흠 잡힐 처신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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