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환익]도요타 ‘공급사슬’ 뚫은 한국 부품사들

  • 입력 2009년 9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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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표본으로 도요타와 협력업체의 관계를 많이 꼽는다. 도요타는 협력 기업에 기술지도와 금융지원을 하고 적절한 마진을 보장하는 반면 ‘도요타 지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살벌한 품질과 성능기준, 차질 없는 납기와 절대적 충성을 요구한다. 아마 이런 점이 제너럴모터스(GM)의 퇴장 이후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자리를 굳힌 도요타 공급사슬(Supply Chain)의 경쟁력일 것이다. 여기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려 한다.

지난 이틀 동안 엄선된 한국 자동차 부품기업 39개사가 사상 처음으로 KOTRA 주선으로 도요타와 직접 수출 상담을 벌였다. 도요타 시의 도요타 본사에서 열린 구매상담회에는 도요타 본사 및 협력업체에서 2000여 명이 참석해 깜짝 놀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우리 부품에 대한 일본 업계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물론 첫 거래부터 괄목할 실적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계약이 성사된다 해도 기존 일본 협력업체의 반발이 있을 테니 계속해서 도요타 공급사슬에 남아 있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처음으로 우리 부품에 관심을 보인 이번 행사의 의미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10년 전의 외환위기 이후 세계시장에 눈 떠서 GM 포드 폴크스바겐 BMW PSA와 거래를 시작한 우리 부품이지만 유독 자체 협력 기업으로부터의 부품조달을 강조하며 눈길을 주지 않았던 도요타와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도요타가 ‘신기술과 신소재’로 만든 우리 부품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에 적극적이 됐음은 우리 부품의 경쟁력이 이제 일본 기업 못지않은 수준임을 말해준다.

‘신기술-신소재’ 품질 인정받아

도요타와의 상담회가 국내에서 갖는 의미도 매우 크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정부도 실질적 성과를 내려고 애쓰지만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는 과제로 남아 있다. 협력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지 않는 대기업 최고경영자가 없지만 중소기업은 늘 불만이다. 대기업이 가격도 제대로 안 쳐주고 납품기준은 그렇게 까다로울 수가 없고 화끈하게 기술 지도를 해주지 않으므로 상생협력이라는 말이 중소기업에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그 결과 최근 대기업의 유례없는 호황에도 불구하고 협력 중소기업은 이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매우 피곤해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연명할 정도의 마진만 챙기면서 대기업에 끌려 다니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품질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가격 타령만 한다며 중소기업에 불만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엇박자가 나는 현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상당부분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존재하는 협상력의 차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협상력의 차이는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에도 원인이 있지만 중소기업이 트집 안 잡힐 완벽한 품질과 성능을 가진 부품을 객관적으로 보증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요타가 우리 중소기업의 부품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는 점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품질보증을 의미하는 동시에 국내 대기업과의 협상력을 수직 상승시킬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공생(共生)은 있지만 상생(相生)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비대칭적 관계에서 아옹다옹하면서 그냥 공존하는 것이 공생이라면 서로 협력을 주고받으면서 시너지를 내고 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서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상생이다.

상생협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더 많은 유인정책을 써야 되겠지만 대기업은 더 큰 포용력을 발휘해야 하며 중소기업은 더 분발해서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자신 있는 제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양측의 협상력이 엇비슷해져서 제대로 된 상생을 추구할 수 있다. 도요타 케이스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위기 이후 전자, 기계, 신재생에너지, 문화콘텐츠, 제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글로벌 기업이 우리 중소기업의 우수한 부품, 소재, 장비를 찾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른 中企도 세계시장서 경쟁을

우리 중소기업이 대기업 관계에서 억울한 일 안 당하고 이겨나가려면 해법을 밖에서 찾아야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세계시장의 중심축에 들어가서 국제표준을 획득하는 등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국내에 돌아와서 당당하게 대기업과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보쉬나 덴소와 같은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길이고, 우리 대기업에도 능력 있는 협력기업을 갖게 하는 올바른 길이 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

조환익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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