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印度人‘인종차별’

  • 입력 2009년 9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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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28)는 2년 반 전 한국에 왔다.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인종차별 문제를 연구하는 그는 7월 10일 저녁 자신을 도와주는 한국인 여성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영어로 대화 중이었다. 술 취한 승객 박모 씨(31)가 뒤쪽에서 “더러운 ××”라고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자 그는 “더러워, 너 더러워. 이 개××야”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라고 외쳤다. 함께 얘기하던 여성의 항의에 “넌 정체가 뭐야. 조선× 맞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게 후세인 씨 측 주장이다.

▷참다못한 후세인 씨 일행은 박 씨를 경찰서로 끌고 가 모욕죄로 고소했다. 결국 박 씨는 최근 검찰에서 모욕 혐의로 약식 기소돼 벌금을 낼 처지가 됐다. 후세인 씨는 박 씨의 행위가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언제나 한국인들의 시선이 느껴지는데 백인들에게 보내는 시선과는 딴판이다”고 말했다. 귀가하면서 버스에서 잠이 들어 종점까지 간 적도 있었는데 운전사가 발로 툭툭 차며 깨우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검찰은 “계획적이고 의도된 발언이라야 인종차별이 된다”며 인종차별로 볼 수 없다는 견해다.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제10조) ‘법 앞의 평등’(제11조)을 선언해놓았지만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미국처럼 별도의 인종차별금지법도 없다. 모욕죄의 법정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말로는 ‘글로벌 시대’와 다문화(多文化) 사회를 외치는 우리 법제(法制)의 현주소다.

▷올해 5, 6월 호주에 유학 중인 4000여 명의 인도인 학생이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시위를 벌였다. 인종차별에 의한 잦은 폭행에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인종차별문제가 아니라는 호주 정부의 변명에도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인종차별과 관련이 있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이런 외교 분쟁이 우리에게도 결코 ‘먼 산의 불’이 아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발칸 반도의 ‘인종청소’가 보여주듯이 인종차별은 증오와 전쟁을 부르는 악성 바이러스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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