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자연 위에 내려앉은 ‘神의 정원’

  • 입력 2009년 9월 6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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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가 500년 이상 지속되면서 왕과 왕비의 능이 온전하게 보존된 사례는 세계에서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조선왕릉이 숱한 전쟁, 자연재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도시개발을 견뎌내고 초대 태조로부터 마지막 황제 순종의 능까지 고스란히 남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후손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조선왕릉은 죽어 있는 무덤군(群)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살아 숨쉬는 대하드라마다. 오래 살며 치적을 높이 쌓은 왕도 있고 병석에 누워 지내다 단명한 왕들도 있다. 수렴청정하는 대비와 외척들 손에 휘둘린 명목만의 왕도 있다. 살아생전에 왕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대적하고 피를 흘렸던 사람들도 죽어서는 원한을 잊고 가까운 곳에 묻혀 있다.

조선왕릉은 산림 환경의 보고이다. 왕조가 무너지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왕릉의 보호림이 수백 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산이 온통 벌거벗었던 나라에서 광릉(세조의 능)은 국립수목원의 숲을 지켜냈다. 평당 땅값이 1억 원을 넘나드는 서울 강남의 선릉(성종의 능)과 정릉(중종의 능) 일대에서 왕릉의 권위가 아니면 7만여 평의 녹지는 보존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린벨트는 지금도 개발 또는 훼손되고 있지만 왕릉벨트는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성역이다.

동구릉 서오릉의 권력 이동

조선왕릉 40기를 다 둘러볼 여력이 없거든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과 고양시의 서오릉(西五陵)을 추천하고 싶다. 두 곳의 능 14기를 둘러보면 조선왕릉의 3분의 1 이상을 감상하는 셈이 된다.

태조의 건원릉이 동구릉의 시작이고 중심이다. 태조는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해 두었지만 태종이 계모인 신덕왕후의 능을 도성 밖으로 이장하고, 태조의 능을 동구릉에 조성했다. 최고 권력자도 죽어서는 자신이 누울 자리 하나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문종의 장자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형 문종이 묻혀 있는 동구릉에 자신과 후손의 무덤을 쓰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새롭게 조성한 곳이 서오릉이다.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9대 임금 성종의 아버지)가 요절하자 서오릉에 무덤을 썼다.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8대 임금)도 이곳에 묻혔다.

왕후 자리를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던 주인공들이 268년 만에 서오릉에서 다시 만난 것도 기묘한 인연이다. 조선의 제19대 임금 숙종과 세 왕후는 서오릉에 유택을 마련했다. 역관집안 출신으로 궁녀에서 일약 왕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다시 희빈으로 강등당한 장희빈의 묘는 원래 경기 광주시 오포면 문형리에 있었다. 1969년 6월 도시계획으로 이장하면서 자신에게 사약을 내린 숙종, 그리고 목숨을 걸고 다툰 연적(戀敵) 인현왕후 민씨가 함께 묻힌 서오릉으로 찾아왔다.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으로 빈번하게 등장한 여인의 무덤을 지금 같았으면 광주시가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후사 없이 죽으면서 왕권은 이복동생 영조에게 넘어갔다. 서오릉에 있는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은 지금도 오른쪽 자리가 비어 있다. 영조는 죽은 뒤 정성왕후 옆에 묻히려고 오른쪽을 비워두었다. 그러나 정조는 중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영조를 동구릉으로 모셨다. 정조의 친할머니는 정성왕후가 아니고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였다. 정조가 영조의 유언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동구릉이 다시 왕조의 무덤으로 대를 잇게 됐다.

정조의 계조모(繼祖母) 정순왕후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했던 여인임에도 정조보다 오래 살아 영조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야사(野史)에는 정순왕후가 정조 독살에 관련됐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은 “정조의 독살은 사료에 근거가 없는 허구”라고 말한다.

明13릉과 겨루는 조선왕릉

식자(識者)층에도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명(明)13릉은 가봤으면서도 정작 동구릉이나 서오릉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피라미드와 명13릉은 그 위용으로 압도하지만 조선왕릉은 풍수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과 그 시대 최고 수준의 건축 조각 조경의 인공물이 합일을 이루어낸다. 본보에 ‘숨쉬는 조선왕릉’을 연재한 윤완준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자연 위에 내려앉은 신(神)의 정원’이다.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60만 평 동구릉 산자락에 흩어진 왕릉들의 사이사이로 난 산책길은 여름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다. 서오릉의 창릉에서 익릉 쪽으로 이어지는 서어나무 길과 익릉 주변의 소나무 조경도 일품이다. 어려운 설명을 굳이 듣지 않더라도 도시인의 건강과 휴식을 위한 녹지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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