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지형]나로호 발사, 과학만의 사건일까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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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즉위 원년, 정조(正祖)는 창덕궁 후원에 2층 누각(樓閣)인 주합루(宙合樓)를 세웠다. 주합루의 1층에는 서고, 2층에는 열람실이 마련됐다. 왕립도서관격인 서고는 역대 국왕의 어제(御製)와 어필(御筆)을 비롯한 문서를 보관하는 규장각으로, 당쟁으로 흔들리는 국가질서를 바로잡고 유능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려는 정조의 의지를 구현한 곳이다. 2층은 열람실 겸 누마루로, 왕과 신하들이 학문과 정사를 논의하던 곳이다.

주합은 전후좌우상하의 육합(六合), 즉 천지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주합루는 우주와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지식과 토론을 가능하게 하고자 했던 문화군주 정조의 이상을 담은 곳이다. 그래서 정조가 친히 주합루의 편액을 썼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주와 하늘에 대한 관심은 조선시대의 궁궐 곳곳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주합루 앞에는 네모난 인공연못인 부용지(芙蓉池)가 있으며, 그 안에는 둥근 섬이 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우주관을 구현한 것이다. 경복궁 후원의 연못인 향원지(香遠池)와 경회루의 기둥, 심지어는 회랑이나 벽의 기둥 받침돌도 천원지방의 우주관을 반영한다.

사실, 우주와 하늘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우주와 하늘은 자연과학만의 독점 영역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차적으로 나로호 발사는 최첨단 우주기술의 결과임에는 틀림없지만 나로호 프로젝트의 의미는 자연과학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 오히려 진정한 의미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학문과 삶 전체를 아우르는 통섭적 관점에서 탐구될 때 비로소 명확하게 구명될 수 있다. 나로호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지구를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삶과 학문분야에서 우주적 각성을 실천해야 하는 때가 도래하고 있다.

“나는 우주의 구성원” 깨달아야

우선 나로호 발사는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의 혁신적인 변화와 실천을 촉구한다. 우주 연구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밝히고 생명의 원초적 근원을 우주 속에서 찾으며 하나의 역사단위로서 지구를 파악해야 한다. 개인은 지구사회와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우주적 시민성을 함양해야 하고, 국가는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면, 빅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137억 년의 우주 역사를 13년으로 환산한다면 인류문명의 역사는 고작 3분, 현대 산업사회는 6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겸허한 우주적 각성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나 문명 중심의 세계사 혹은 서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폐기하고 상호의존성을 중심으로 지구 전체를 조망하는 지구사(global history)나 빅뱅부터 역사를 탐구하는 거대사(big history)를 추진해야 한다.

또한 나로호로 상징되는 우주개발이 우리에게 제공할 새로운 감각과 감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19세기에는 사진기와 강철 그리고 철도의 등장으로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 변화하고 문화와 예술의 표현방식이 변모했다. 발전하는 도시는 대중으로 흘러넘치고 시공간은 응축되었으며 새로운 예술사조가 속속 등장했다. 르네상스 이후에 금과옥조로 간주됐던 원근법이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예술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가의 사고과정이 표현의 중심이 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감각과 감성으로 우리의 예술과 문화는 새롭게 변모하고 한류를 통해 문화지형이 급격한 지각변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 등 전래설화는 과학기술의 등장으로 신뢰성과 영향력이 현저히 저하됐지만 우주시대에 우주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부상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장르에서 우주 판타지가 급속도로 증대하고 우주적 상징패턴과 이미지가 일상까지 확산될 것이다.

우주개발, 사회통합의 계기로

그리고 우주개발이 수반하는 권력관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우주개발로 인한 이공계 연구구조와 산업구조의 변화만이 아니다. 사회 및 정치 권력구조도 예외일 수 없다. 우주적 정체성을 함양한 시민들은 글로벌 협업에 기초한 사회와 정치구조를 창출하고 국가 지도자의 인식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국가사업으로서의 나로호 프로젝트는 당분간 국가주의의 확대를 가져오겠지만 결국 국가 중심의 사고를 해체시키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권력관계의 변화가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을지, 아니면 소통과 화합으로 귀결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정조가 주합루의 창건을 통해 희망했던 것과 같이 우주개발이 우리 사회의 통합과 관용의 증대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과 우주, 국가와 세계,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현재의 분절된 대립관계를 우주적 관점을 통해 해소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우주개발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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