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론/김일영]오바마 시대<5·끝>오바마 당선의미 ‘아전인수’ 말아야

  • 입력 2008년 11월 11일 02시 58분


미국은 변화를 택했다. 한국도 변화를 택했었다. 버락 오바마 당선인이 현재 미국에서 변화의 상징이라면 이명박 당선인은 1년 전 한국에서 변화의 상징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악재가 겹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녔던 변화의 이미지와 상징성이 잊혀지거나 퇴색했을 뿐이다.

변화의 방향 달라 부조화 가능성

물론 오바마와 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은 같지 않다. 그 점에서 한미 간에 불협화음이 생겨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부조화는 두 사람의 등장 배경이 판이해서 생겨났다. 오바마는 30여 년간 지속된 보수시대의 반작용으로 등장했고, 이 대통령은 10년간의 진보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했다. 어쨌든 두 사람은 각자가 처한 조건에서 ‘변화’를 내걸고 집권에 성공했다.

오바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리처드 닉슨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처했던 어려움을 한꺼번에 맞으면서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흔치 않은 대통령이다. 루스벨트가 직면했던 대공황에 버금가는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그의 앞에 놓여 있다. 닉슨이 맞닥뜨렸던 베트남전의 수렁에 못지않은 이라크전의 수렁이 그의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링컨이 고심했던 흑백갈등에 비견되는 사회통합의 위기가 그의 치유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답은 ‘21세기형 뉴딜체제’로의 변화이다. 국가 개입을 통해 고삐 풀린 시장(특히 금융시스템)에 대한 적절한 규제의 회복, 95%의 중하류층에 대한 감세와 5%의 부유층에 대한 증세, 과감한 정부 지출 확대, 힘을 앞세운 미국 일방주의 대신 연성권력(soft power)에 기반을 둔 협력적 외교로의 복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포용 등이 오바마로 상징되는 미국의 진보가 내세우는 정책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진보정권 10년 동안의 성장잠재력 약화, 무원칙하고 방만한 대북지원,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라는 조건 위에서 출범했다. 따라서 ‘작은 정부 큰 시장’의 구호 아래 감세와 재정긴축, 한미동맹 강화와 원칙 있는 대북정책, 중산층 복구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보수로의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감세는 하되 정부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변화의 방향을 선회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이명박 정부를 필두로 하는 한국의 보수와 미국의 진보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생겨났다. 오바마의 대북 대화정책이나 대북 수교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그것은 한국의 ‘안보 보수’가 내세우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 오바마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고할 경우 그것은 한국의 ‘시장보수’와 부닥칠 수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는 오바마의 당선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 그의 당선이 그들이 주장하던 대북 포용정책과 신자유주의 반대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었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진보의 정당성이 외부로부터 오지는 않는다.

좌든 우든 향후 한미갈등 대비할 때

미국의 민주당은 오바마콘(오바마를 지지하는 공화당원)을 만들어냈지만 한국의 민주당은 1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진보는 동반성장과 빈곤퇴치를 내용으로 하는 ‘해밀턴 프로젝트’ 같은 정책대안을 준비했지만 한국의 진보는 국민에게 믿음직한 대안세력으로 여겨질 만한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더구나 한국의 진보에는 북한 핵과 인권에 눈을 감는 세력이 적지 않게 숨어 있다. 이 점에서 오바마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미국과 한국의 진보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오바마 정부가 한미 FTA를 수용할 경우 이런 갈등의 여지는 더 커진다.

오바마 정부와의 충돌 가능성은 한국의 보수, 진보 양 진영에 다 있다. 따라서 각 진영은 오바마의 당선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다. 갈등의 소지를 알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