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멜라민과 신자유주의

  • 입력 2008년 9월 25일 20시 20분


“주식시장이 또 무너졌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번 거품 붕괴를 미국 시스템과 사회에 대한 징벌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다. 그런데 최근이 아니라 8년 전이다. 신경제의 상징이자 ‘미국의 비아그라’였던 닷컴이 2000년 나스닥과 함께 추락했다. 이제 미국 패권 시대는 끝났다는 조종(弔鐘)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국가주도 자본주의 중국의 실상

당장 망할 것 같았던 미국은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경기침체에 빠져든 미국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일등공신 중 하나가 저금리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당시 의장이 집값 거품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씨를 뿌린 원흉으로 비난받지만, 그때 그가 없었더라면 2002∼2007년 세계사에 유례가 없었던 글로벌 경제 성장도 없을 뻔했다.

닷컴 붐이 깔아놓은 정보테크놀로지 인프라도 알고 보니 효자였다.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안 될 놈은 사라지고 될 놈만 살아남아선 산업 곳곳에 파고들어 생산성 폭발을 일으켰다. 민간의 활력을 한껏 살려준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울트라터보 성장 엔진이었다.

지금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번지자 미국식 시장경제의 몰락을 알리는 종소리가 다시 요란하다. 인류에 재앙을 안겨준 신자유주의 대신 국가주의로 무장한 정부가 나서서 부도덕한 시장과 무지한 국민을 지도 편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 선택의 결과를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국가가 알아서 먹여주고 죽을 때까지 보살펴 주겠다니 고맙기 짝이 없다.

공교롭게도 때맞춰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대표, 중국이 ‘멜라민 분유 공포’를 세계에 확산시키고 있다. 분유회사들은 양을 늘리려 우유에 물을 타고, 맹맹해진 우유의 단백질 함량을 맞추려 치명적인 성분을 넣었다. 제조상의 실수도 아닌 의도적, 살인적 범죄행위다.

그중에서도 최대 분유사인 싼루의 대주주는 본사 소재지인 스자좡 지방정부이고 사장은 공산당 간부가 맡고 있다. 규제기관이 겹겹이 있되 감독 결과를 지방정부에 보고하게 돼 있다. 국가가 기업이고 법(法)인 셈이다. 그러니 지난해 거액의 뇌물을 수차례 받고 가짜약품 제조를 묵인한 국가식약품관리감독국장을 전격 사형시키면서 식약품안전을 맹세했다 해도 중국이 달라질 리 없다.

이런 제품으로 제 나라 아기들 목숨을 뺏은 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식품에 섞어 만든 파생상품으로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사소하다고 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도 정부 나름이고 규제도 규제 나름이다. 신자유주의 미국의 주가가 올해 들어 18% 떨어진 데 비해 국가 주도 경제의 중국에선 48%나 떨어진 걸 보면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유능하지도 못한 정부가 역할을 확대하는 건 세금만 더 뜯어가 흥청망청 쓰겠다는 얘기다. 기업보다 못한 삼류정부의 규제 강화는 뇌물과 부패의 통로를 넓히는 데 불과하다.

특히나 선진국들이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번영을 구가한 지난 몇 년간, 과거 집권세력은 시대착오적 이념과 정책으로 황금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러고는 또다시 무차별적 국가 역할 확대와 규제 강화를 외치는 모습은 가당찮고 가소롭다.

국민은 정치꾼들 ‘밥’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종교가 아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절대가치도 아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큰 정부가 필요할 때도 있고 작은 정부가 좋을 때도 있다. 개인이든 금융기관이든 국가든, 어떤 상황에도 유연(Flexibility)하게 적응(Adaptability)해서 경쟁력(Competitiveness)을 갖추는 ‘팍(FAC)’ 전략이면 살아남을 수 있다.

유연성과 적응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은 언젠간 금융위기에서 벗어난다. 우리만 신자유주의니 국가주의니 ‘주의’에 집착하는 건 멜라민만큼 위험하다. 중국산 멜라민이야 맨밥만 먹고 살면서 피해간다 해도 이 나라는 쉽게 떠날 수도 없다. 국회를 열까 말까를 놓고 흥정이나 해대는 의원들, 돈벌 곳은 막아놓고 돈 버는 이는 능멸하면서 갈라먹기에만 혈안인 공조직을 위해 혈세를 더 바치긴 싫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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