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 시대적 소명 다해 대기업 투명성 확보 중점”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백용호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6일 밤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대기업에 대한 정책은 지배구조 개선보다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출총제 폐지 대신 기업공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백용호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6일 밤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대기업에 대한 정책은 지배구조 개선보다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출총제 폐지 대신 기업공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백용호(52)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의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신 3차 아파트 자택은 벽지가 뜯어지고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는 낡은 집이었다.

휑한 느낌이 들 만큼 가구가 단출한 이 집에 대해 그는 “손님들이 ‘이사하고 짐을 안 풀었느냐’고 묻곤 한다”며 멋쩍어했다. 6일 밤늦은 시간에 시작한 인터뷰도 마룻바닥에 앉아 했다.

그는 학자로서 의견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정부가 다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기업친화적’이라는 말을 안 쓴다. ‘시장친화적’이라고 써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새 정부에서 공정위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장경제는 인간과 조직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체제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게 투쟁이 돼서는 안 된다. 뒷골목 싸움패들의 난장판이 아닌, 권투 경기와 같은 스포츠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벨트 이하로는 때리지 말라’ 등 룰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룰이 항상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스포츠 룰도 바뀐다.”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출총제는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본다. 기업들이 출총제로 인해 출자를 제한받는 상황도 아니다. 그저 규제의 상징으로만 남아 있다. 출총제 폐지가 대선 공약이었지만 공약 준수 여부를 떠나 바뀌어야 할 제도다.”

백 위원장의 발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임기 10년간 ‘대기업에 적대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공정위의 정책 방향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보완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

“필요하지만 보완 대책이 전보다 더 큰 규제를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된다. 대기업 집단에 대한 시책은 지배구조 개선보다 투명성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출총제 폐지 대신 기업 공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 대기업의 투명성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나.

“국민의 신뢰가 엄청난 자산임을 대기업은 인식해야 한다. 대기업이 투명해졌느냐고 묻는다면…삼성 특검 사태를 보면 안타깝다. 결과가 나와야 얘기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도) 국민이 보기엔 매우 민망한 일이다. 시장친화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기업 스스로 윤리경영 등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에 대한 조사 방식도 바뀌나.

“기업을 무리하게 조사하는 게 아니라 문제만 집어낼 수 있는 조사 기법이 나와야 하지 않나 싶다. 기업 거래 자체가 굉장히 고도화되고 회계 작성도 복잡해졌는데 공정위 공직자들이 기업의 상거래 고도화에 맞서 더욱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국내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데….

“독점을 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 시각으로 보면 독점이지만 글로벌 마켓 기준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국내의 규제가 더는 글로벌 활동에 저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내 금융시장의 경우 서너 개 은행이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있지만 세계 기준으로 보면 사이즈가 작다. 합병할 필요가 있다. 국내 시장에서 보면 독점적이지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그렇지 않다.”

―교수 출신이고 관직 경험이 없어 조직을 잘 이끌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지구당위원장(서울 서대문을·한나라당)을 2년 했는데, 지구당처럼 꾸려 나가기 어려운 조직도 없을 거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배웠다. 시정개발연구원 원장도 3년간 무리 없이 잘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언제부터 알았나.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할 때부터다. 나는 40대의 이름 없는 학자였지만 그분은 당시에도 이미 신화적인 존재였다. 처음엔 정주영 명예회장의 친척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무척 놀랐고, 알게 되면서 점점 매료됐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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