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진우]北 다녀온 작가들의 침묵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코멘트
언론에도 보도된 바와 같이 지난여름 많은 작가들이 북한에 다녀왔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라는 명칭을 단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100명에 가까운 남한 작가가 일시에 북한을 방문하고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 같은 금단의 구역에 발을 디딘 것은 남북한 간의 오랜 단절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행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필자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본 것은 태어난 후 처음 북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온 작가들이 보인 반응이다. 행사를 주도한 몇몇 집행부 임원을 제외하면, 금강산 관광같이 극히 한정된 지역을 둘러보고 온 것 외에는 처음 북한 사회를 대면했을 대다수 작가들이 이 며칠간의 체험을 통해 무슨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나라라고 하는 북한. 이 가깝고도 먼 나라를 풍문이나 TV 화면이 아니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돌아온 작가들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실망스럽게도 북한을 다녀온 작가들은 여기에 대해 이렇다할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백두산 정상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남북한 작가가 하나가 됐다거나 남북한 문학의 본격적인 교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하는 식의 감상적이고 상식적인 언급이 대종을 이루고 있을 뿐, 북에 대한 남측 작가들의 진솔한 느낌과 생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가들이 사석에서까지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북이라는 체제가 준 충격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과감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북이 얼마나 닫혀 있는 사회이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는지, 그런 체제 하에서 보통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삶이 얼마나 많은 질곡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인지에 대해 분노에 차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적인 지면에선 이러한 발언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고 대신 백두산의 풍광이나 평양냉면 맛을 거론할 뿐이다.

나로선 동료 작가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북한 사회의 이모저모보다 바로 이 점, 정작 이야기해야 할 핵심적인 지점에 이르러 입을 다물고 마는 작가들의 침묵이 흥미로웠다. 그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북한 체제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말하는 것이 혹시 현재 진행 중인 남북 관계의 진전을 저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그런 발언이 기존의 상투적인 대북 비판과 구분되기 힘들고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에선 자칫 수구 냉전적 사고의 소유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검열이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심리적 차원에서 현재 다수 작가들의 머릿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하면 떠오르는 소설의 한 장면이 있다. 장정일의 소설 데뷔작이기도 한 ‘아담이 눈뜰 때’는 1980년대 후반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작품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입시를 앞둔 두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이 여관방에서 한바탕 숨 가쁘게 섹스를 하는 동안 TV에선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체육관 같은 곳에 앉아 있는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손뼉을 치고 있는 장면이 비친다. 여관방에서의 섹스 장면과 북한의 동원 체제를 동시적으로 연결시킨 이 불경스러운 장면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애용한 유명한 시 구절, “해부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만큼이나 돌연했고 신선한 면이 있었다.

침묵은 때로 공적 발언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나는 북한을 다녀온 작가들이 말을 아끼는 것이 부질없는 시비에 휘말리기 싫다는 의미도 있지만 직접적인 발언 대신 간접적인 문학적 형상화를 중시하는 속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작가들의 짧지만 강렬한 북한 체험이 앞으로 씌어질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우리 문학을 변모시키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해 보자. 그것이 외화내빈에 그치기 쉬운 이런 행사를 넘어서 한국문학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남진우 시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