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늘로 간 '하얀사랑' 동화작가 정채봉씨

입력 2001-01-09 19:15수정 2009-09-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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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타계한 동화작가 정채봉은 얼마 전까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며칠 전 병원에서 의식을 잃기 전에는 최근 출간된 미니북 ‘하얀사랑’에 직접 사인을 해 병원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다. 그와 의형제를 맺었던 시인 정호승은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주변의 안타까움 속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문학사적인 면에서 마해송 이원수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처음으로 ‘성인 동화’를 개척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5월 광주’ 이후 한때 심각한 정신적 공황을 겪었으나 천주교에 귀의한 뒤 심적인 안정을 찾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그가 남긴 30여편의 작품 가운데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은 ‘물에서 나온 새’(1983)를 비롯해, ‘오세암’(1986),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 7권(1991) 등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들이 80년대 이후 쓰여진 것들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300만부 이상 팔리면서 그를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1978년부터 20여년간 몸 담아온 월간 ‘샘터’는 그의 분신과도 같았다. 편집부 기자로 출발해 편집부장 주간을 지냈으며 타계 직전에도 이사 직함을 갖고 있었다. 그는 80년대에는 한 달에 3000통이 넘는 독자들의 편지를 일일이 읽는 성실함으로 이 잡지의 한달 발행부수를 50만부 넘게 끌어올리기도 했다.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또 동국대 국문과 겸임교수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98년 간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펜을 놓지 않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에세이집 ‘눈을 감고 보는 길’과 첫 시집인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등이 투병 중에 쓰여졌다.

평소 이해인 수녀를 비롯해 소설가 조정래, 장익 천주교 춘천교구장, 홍기삼 동국대 교수, 박종만 까치출판사 사장 등 지인들이 병상을 자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는 않았다. 6년 전 이혼했다가 법정 스님의 주선으로 재결합한 부인 김순희씨도 지난해 11월부터 고인의 곁을 지켜왔다.

이날 그의 빈소는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송석구 동국대 총장 등과 각 출판사와 문인단체에서 보내온 화환 30여개로 가득찼으며 시인 김남조 정찬주, 소설가 조정래 최인호, 가수 노영심씨 등 300명의 지인들이 눈길을 헤치고 와 고인을 애도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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