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이념논쟁]연합제와 연방제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58분


남북공동선언은 남쪽이 말해 온 연합제와 북쪽이 말해 온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있으며 이 기초 위에서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임을 다짐했다. 이 항목은 뜨거운 감자로 등장, 즉각적인 토론을 유발시켰다.

우선 연합제란 무엇인가. 영어의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에 해당하는 연합제는 주권국가와 주권국가가 서로 주권을 보유한 채, 그러니까 자신의 주권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채, 서로 연결만 시켜놓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연합제에서는 통합된 중앙정부가 세워질 수 없고 다만 연합에 가입한 국가들의 회의체만 개설된다.

한반도의 경우 연합제란 결국 대한민국이란 독립된 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독립된 집 위에 적절한 이름의 지붕 하나를 얹는 것을 뜻한다.

연방제는 영어의 페더레이션(federation)에 해당한다. 이것은 주권국가와 주권국가가 서로 각자의 주권을 전부 또는 꽤 많이 내놓고, 그래서 모아진 주권을 기반으로 두 주권국가를 모두 통할하는 하나의 중앙정부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적 입장에서, 두 제도 사이에는 서로 떨어져 있던 국가들을 한 지붕 아래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또 세계역사를 보면, 대체로 연합제를 거쳐 연방제로 넘어 가면서 통일을 이뤄냈다.

게다가 연합제에서 곧바로 연방제로 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 거기에 기초해 통일이 실현되도록 힘쓰자는 것인데 무슨 문제냐고 주장한다. 더구나 북한이 연방제에 대해 지난날과는 달리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반문한다.

반면에 보수적 입장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전제로 한 것이고 높은 단계의 연방제란 1민족 2국가 제도인 연합제와는 달리 1민족 1국가 제도인 만큼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주권독립국가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위험스러워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이 항목과 관련해 김일성 주석이 내세웠던 고려연방제에 직결된 것이라고 선전하는 것, 또 국내로 흘러들어온 몇몇 해외의 ‘친북적’ 논설이 암묵적으로 ‘김정일 지도자 아래서의 연방제 통일’을 말하는 것 등이 보수적 입장에 선 사람들의 의심을 부추긴다.

이 항목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교과서적으로만 볼 때, 연합제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모두 완전한 통일로 가는 중간 단계에서의 잠정적 과도적 조치이다. 이 단계를 남과 북이 함께 인정했다는 것은 남과 북이 ‘빠른 통일’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합의는 남과 북이 상황에 따라 평화공존의 단계로 넘어 갈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후퇴한다면 이 항목 역시 빛을 잃게 될 것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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