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소주값 인상

  • 입력 1999년 1월 19일 19시 53분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이민족간의 전쟁에서는 부산물로 ‘문화전파’가 이뤄진다.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의 학자 예술가 기술자들이 일본에 유학을 전파하고 도자기를 비롯해 종이, 심지어 두부제조법까지 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주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도 전쟁의 부산물이었다. 페르시아를 정복해 알코올 증류법을 배운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알코올 증류법을 배웠다가 고려 침략 때 가져온 것이다.

▽아랍어에서 알코올을 ‘아라그(Arag)’라 하고 해방 전 개성지방에서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른 것을 보아도 소주의 전래과정이 짐작된다. 고려 공민왕 때 경상도 원수(元帥) 김진(金鎭)이 소주를 너무 좋아해 명기(名妓) 및 부하와 함께 소주도(燒酒徒)가 됐다는 비난 기록이 있을 만큼 소주는 오래 전부터 우리 역사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 오랜 역사로 말미암아 막걸리와 함께 대표적 서민의 술로 자리잡은 소주가 늦어도 내년 6월부터 1병(3백60㎖)에 3백원이 올라 1천원이 된다고 한다. 위스키 제조 국가들이 같은 증류주인데 소주의 세율이 위스키의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승소했기 때문이다. 민속주든 서민의 술이든 글로벌 시대의 주세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음을 실감나게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2백60만㎘로 전년보다 9%가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주는 오히려 4.8%가 증가한 68만7천㎘나 팔렸다니 IMF시대 답답한 속을 풀기 위해 서민들이 얼마나 소주를 마셨는지 알 수 있다. WTO협약에 따라 50% 가까운 소주값 인상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IMF터널을 벗어나고 소득이 크게 늘어 소주값 정도는 부담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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