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세이]이호철/압록강변의 「통곡」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5분


지난 8월 한 TV로 방영된 「압록강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50분짜리 화면을 보며 그냥 무심하게 넘긴 사람이 있다면 강철 심장을 지녔거나 목석에 다름아니라고 나는 감히 이야기하겠다. ▼ 江너머 아들에 목메인 외침 그 프로는 함경북도 혜산에서 월남해 온 분들의 모임인 「혜산 군민회」에서 주관하고, 더러 북녘땅으로 드나드는 옌볜(延邊)조선족의 알선과 도움으로 현 우리 남북의 친족들이 몽매에도 그리던 핏줄을 찾아 만나는 현장을 담은 화면이었다. 헤어질 때 네살이었던 아들을 만나 보려고, 아니 강 너머로 목소리라도 들어보려고 서울서 비행기로 베이징(北京)으로 돌아 허위허위 이곳까지 온 늙은 어머니는 강 건너에다 대고 소리를 지른다. 『받았니이? 그거 받았니이? 받았어어?』하고. 아마도 북한으로 드나드는 옌볜사람 인편을 통해 돈 몇푼을 보냈는데 그걸 확인하자는 것인 모양이다. 그러나 저쪽 강변에 나와 앉은 서너 사람중의 한사람은 이쪽에서 궁금하게 여기는 물음에는 아랑곳 없이 한 손으로 연성 가슴을 치며 자기가 바로 아들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50년 겨울 헤어질 때 네살이던 아들은 지금은 초로에 접어든 쉰살로 저렇게 폭이 좁은 압록강 상류 강 건너에 제 새끼들을 데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서울서 허위허위 찾아간 강 이쪽의 파파 늙은 어머니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울 일밖에는 없다. 아아, 어쩌다가 지난 50년 동안에 이 민족이, 이 강산의 사람살이가 이 지경으로까지 됐단 말인가. 나 자신도 북한 원산에서 열여덟살에 단신 월남해 온 대표적인 실향민이어서 유난히 더 그 화면이 그렇게 보였을까. 그렇게도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막혀 왔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 분단 볼모에 우리 모두 마비 ▼ 21세기를 바로 지척 앞에 둔, 세계화라나 국제화라나 하고 한쪽에서는 밤낮으로 장구치며 읊어대는 이 백주 대낮의 다른 쪽 구석에서는 버젓이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 나라는 과연 어느 시대를 맴도는 나라인가. 이런 괴이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정경을 아직도 연출하고 있는이 나라는 몇만년전 금수의 나라인가. 우리는 지금 통틀어 모두가 분단이라는 볼모에 잡혀 마비돼 있다. 이호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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