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켈러센터’ 만들어 시청각장애인 돕기 앞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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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복지재단

시청각장애인 D 씨(왼쪽)가 손으로 수화를 만져 소통하는 ‘촉각수어’로 소통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시청각장애인 D 씨(왼쪽)가 손으로 수화를 만져 소통하는 ‘촉각수어’로 소통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음에도 작가로,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 위대한 인물 중 하나다. 그러나 헬렌 켈러가 그러한 삶을 살기까지는 일평생 그녀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준 설리반이 있었다. 한국에도 1만여 명의 헬렌 켈러가 있다.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은 그들에게 설리반이 되어 줄 일명 ‘헬렌켈러법’ 통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은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을 맞아 헬렌켈러법 제정을 위한 서명 캠페인 ‘우리는 헬렌켈러가 될 수 없습니다’를 진행한다.

헬렌켈러법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중복으로 겪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별도법이다.

소위 헬렌 켈러라 불리는 시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함께 있는 장애인이다. 우리나라엔 약 1만 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소통수단을 ‘촉감’에만 의지해야 하는 이들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중증 장애인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기에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이 상당하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은 전무하다. 시청각장애인은 현행 장애인복지법상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청각장애인들은 시각과 청각 중 한 가지 유형으로 장애등록을 할 수밖에 없으며, 중복으로 등록하더라도 시청각이 아닌 시각과 청각이라는 각각의 장애로 등록이 되기 때문에 시청각장애라는 특수성에 맞는 지원은 받기 어렵다.

시청각장애인 A 씨가 바로 그 예다. 선천성 청각언어장애인인 A 씨는 어느 날 갑자기 눈앞마저 흐려지며 시청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는 도움을 받기 위해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찾아갔지만, 문자와 음성언어가 교육기반인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들리지도 않고 점자도 모르는 그에게 적합한 교육을 제공해주기란 어려웠다. 시각장애인이었다가 중도에 청각장애까지 오면서 시청각장애인이 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각장애인복지관에 간다 하더라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시청각장애인들에게 발생하는 대다수의 문제는 의사소통의 단절에서 기인한다. 의사소통의 단절은 정보접근은 물론 교육과 고용 등 모든 기회를 박탈해 이들을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A 씨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시력이 흐려지면서 손님이 주는 돈조차 셀 수 없어 결국 문을 닫았다. 이후 공장 등 여러 직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좌절을 맛봤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청각장애인 B 씨도 “시각을 잃은 후 안마기술을 배워 안마소에 취직하려고 했지만,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나를 꺼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외부활동의 제약은 또 다른 장벽이다. 시청각장애인 C 씨는 공공시설에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C 씨는 “외부활동 시 누구에게 묻거나 들을 수 없으니 점자정보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스크린도어 점자, 점자블록 등 명확하게 정보기재가 안 되어 있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독립생활을 하기 어려운 시청각장애인들의 경우 활동보조인이 필요하지만 제공되는 시간이 너무 적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만 사용 가능한데, 그러다 보니 시청각장애인은 활동보조인이 있을 때만 이동이 가능해 본인이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없는, 이동권의 제약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시청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시청각장애인 10명 중 7명은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며, 한 달간 외출을 못한 시청각장애인은 전체 장애인보다 3배나 많았다. 의무교육조차 받지 못한 시청각장애인은 33%로, 이는 전체 장애인의 3배에 달했다.

헬렌 켈러의 나라인 미국은 1968년 시청각장애인 관련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들에게 언어, 교육, 자립생활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렌켈러센터도 전국 10개소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얼마 전 시청각장애인 변호사까지 탄생했다. 가까운 일본도 시청각장애를 별도 유형의 장애로 규정하고 지원센터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위한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2월 11일, 이명수(충남 아산갑)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이 시청각장애인 특성 및 복지 요구에 적합한 지원을 주요 골자로 한 ‘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 법안에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보접근 및 의사소통 지원, 활동지원사 및 시청각통역사의 양성 및 지원, 자조단체의 결성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통합적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시청각장애인의 복지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정보 제공 등을 업무로 하는 시청각장애인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도록 규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밀알복지재단도 법안 마련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종인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교수를 필두로 전문가와 장애당사자로 구성된 ‘헬렌켈러위원회’를 만들어 법과 제도 마련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헬렌켈러 아카데미’를 운영해 시청각장애인의 이해를 돕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시청각장애인 발굴과 인식개선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밀알복지재단은 추후 법안 통과 시 ‘중앙시청각장애지원센터’의 전신이 될 헬렌켈러센터의 문을 4월 17일 연다. 밀알복지재단은 헬렌켈러센터를 통해 고립된 시청각장애인들을 발굴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수행한다. 더불어 시청각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목표로 촉각수어, 촉점어 등 장애당사자의 특성에 맞는 언어교육을 제공하고, 자조모임을 조직하며, 활동보조인과 통역사를 파견하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연구사업으로 시청각장애인들의 권리,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할 수 있는 교재를 출간하고 외국사례 벤치마킹과 국내 욕구조사를 통해 장애당사자들의 욕구가 정책과 서비스에 반영되도록 할 계획이다.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상임대표는 “시청각장애인은 시각 및 청각 기능이 함께 손상된 장애인으로 단순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과는 다른 생활실태와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일반 장애인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도움의 필요 정도가 매우 높다”며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위한 제도 마련과 지원은 시청각장애인의 권리보장 차원에서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밀알복지재단은 추후 ‘우리는 헬렌켈러가 될 수 없습니다’ 캠페인을 통해 모인 서명을 국회로 전달해 법안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황효진 기자 herald99@donga.com
#나눔 다시 희망으로#사회공헌#밀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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