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름·박지우 청원 참여인원, 60만 명이 말이 되나”…여론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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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2월 26일 15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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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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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김보름 청원’ 추천인 수 60만 명은 말이 되는 건가요?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이 61만 명이던데…김보름 선수가 흉악범도 아니고, 그냥 좀 반성하면 되는 거지. 청와대 청원까지 가다니 사람들 좀 ‘오버’한다고 느꼈네요.”

최근 한 누리꾼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쓴 글 내용이다. 그가 말한 ‘김보름 청원’이란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뜻한다.

청원이 올라온 날인 19일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7위에 그치며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문제는 순위가 아니라 경기 과정과 선수들의 인터뷰 태도였다. 팀추월 경기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한 몸처럼 달려야 한다. 그만큼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김보름, 박지우는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으며 노선영은 한참 뒤쳐져 들어왔다.

김보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중간에 잘 타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뒤에 저희랑 좀 격차가 벌어지면서 아쉬운 기록이 나왔다”며 노선영 탓을 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박지우는 “의사소통 문제도 있고, 사실 선영이 언니가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걸 저희가, 근데 기록 욕심도 있다 보니까”라고 말했다.

‘왕따 논란’이 불거졌고, 김보름과 박지우는 대중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특히 인터뷰 당시 카메라에 비웃는 듯 한 표정이 잡히기도 했던 김보름을 향해 비난이 집중됐다. 온라인에서는 “김보름과 박지우 선수의 국대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을 이었다. “저런 인성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게 국민으로서 창피하고 세금으로 연금 주기도 싫다” “너무 아쉬운 행동이었다” “국가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 “국민이 보고 있었고 전 세계인이 보고 있었다. 진심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창피하다”며 비난이 잇따랐다. 김보름을 후원하는 한 아웃도어 브랜드에도 후원을 끊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김보름은 자신의 주종목인 매스스타트(출전한 모든 선수가 함께 출발해 순위 경쟁을 펼치는 경기)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앞선 논란이 김보름의 매스스타트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대다수 누리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김보름의 매스스타트 경기를 응원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김보름·박지우 청원’의 참여 인원수는 무섭게 불어갔고, 하루 만에 20만 명을 넘어서며 청와대 관계자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게 됐다. 일주일 만인 26일 오후 현재 추천인 수가 60만3000명을 넘은 상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글 중 최단 기간에 참여 인원수 최다 달성 기록이다. 앞서 답변이 완료된 청원까지 포함해 가장 많은 참여 인원수를 동원한 청원은 청와대가 4번째로 답변한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61만300명)이다. 그만큼 이번 논란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21일 팀추월 7, 8위전에서도 김보름은 홈 관중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린 김보름은 24일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기쁜 표정은 없었다. 김보름은 경기 후 울먹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사죄의 뜻으로 관중들 앞에 두 차례 큰절을 올렸다.

매스스타트 경기 후 여론은 차츰 돌아서는 모양새다. 일부 누리꾼은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이라는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이 흥분한 것 같다” “순간 화나서 잠깐 비판할 수는 있지만 국대 자격 박탈이니 퇴출을 언급했던 것은 너무한 것 같다” “솔직히 여론이 무섭다. ‘집단 광기’ 같다” “청원 숫자 60만 명은 김보름 본인에게는 엄청난 압박이다. 우르르 몰려가서 한 명 몰아세우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어른들이 잘못한 일인데 어린 선수가 과하게 비난을 받았다”라고 지적했다.

한 누리꾼은 “‘비웃는 듯 보였다’는 장면 하나만으로 선수의 인성을 판단할 수 있나. 평소처럼 인터뷰를 한 것인데 표정 자체가 오해를 산 것으로 보인다”며 김보름이 평소 인터뷰에서도 한 쪽 입꼬리를 올린 표정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보름의 지난 인터뷰 장면을 갈무리한 사진들도 첨부했다. 사진 속 김보름은 한결같이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앞서 노선영의 폭로로 제기됐던 ‘특혜 훈련’ 의혹을 향한 여론의 분위기가 반전된 것도 있다. 빙상연맹의 행정 착오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뻔했던 노선영은 지난달 26일 보도된 언론 인터뷰에서 “이승훈·정재원·김보름 3명이 태릉선수촌이 아닌 한국체대에서 따로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특혜 훈련’ 의혹이 나왔다.

이승훈은 “매스스타트는 종목 특성상 한국체대에 있는 쇼트트랙 코스에서 훈련하는 게 맞다”며 특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매스스타트는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이지만 참가자가 동시 출발이라는 점에서 쇼트트랙 요소도 있다. 선수촌 쇼트트랙 훈련장은 스피드스케이팅 등 다른 종목 국가대표는 이용할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특혜 훈련’ 논란도 차츰 사그라졌다. 이승훈·정재원·김보름이 팀추월보다는 매스스타트 훈련에 주력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선영은 이들이 따로 한국체대에서 훈련을 하는 것을 두고 특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온라인에 퍼졌다. 다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이승훈은 24일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뒤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선영에게)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쇼트트랙 코스에서 훈련해야 해서 그렇게 했지만, 그런 훈련이 다른 동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왕따 논란’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완전히 가셨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어떤 이는 “국민적 관심을 한 눈에 받는 올림픽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거기서 ‘역대급’으로 불편한 경기와 인터뷰로 논란에 휩싸였던 것인데, ‘집단 광기’니 하는 표현은 듣기 좋지 않다”고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다만 비난 일색이었던 온라인에서 김보름을 두둔하는 글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류가 점점 강해지는 분위기다.

박예슬 동아닷컴 기자 ys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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