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성향 총리가 장관 물갈이땐 ‘국정 리셋’… 靑 수용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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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국/총리권한 어디까지]책임총리 ‘내각 임면권’ 쟁점 부상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여야가 추천하는 국무총리를 수용하고, 총리에게 내각 통할(統轄·모두 거느려 다스림)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야당의 호응 여부에 따라 ‘책임총리제’라는 새로운 실험이 실시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여야가 모두 동의하는 총리 후보자를 고르는 것부터가 난제다. 설령 총리감을 찾아 박 대통령에게 추천하더라도 이후 내각 개편을 두고 수많은 쟁점이 불거질 수 있다. 국정 정상화까지 첩첩산중인 셈이다.



 박 대통령에게서 총리 추천 공을 넘겨받은 야권은 이날 곧바로 박 대통령에게 총리 임면(任免)권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해달라며 다시 공을 넘겼다. 헌법 87조엔 국무위원(장관)은 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총리가 실질적으로 임면권을 행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요식행위에그친 셈이다.

 야권이 요구한 책임총리의 전제조건은 총리가 조각(組閣)에 가까운 내각 개편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의 위임이다. 결국 대통령은 총리가 해임을 건의한 장관을 모두 퇴진시키고, 총리가 요청한 인사를 모두 수용하라는 의미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총리 후보자는 야권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총리가 개각을 주도하면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전면 재조정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가 책임총리제 실현의 첫 번째 관문이다.

 박 대통령이 2일 지명한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정책실장 출신이다. 그는 지명 바로 다음 날 기자들에게 “교과서의 국정화가 우리 사회에 합당한 것인가, 지속될 수 있는가 의문을 갖고 있다”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했다. 야권이 새롭게 추천할 총리 후보자 역시 국정 역사 교과서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달 말 국정 교과서 공개를 앞두고 혼선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야권은 당장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미 9월 24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음에도 새누리당은 국정감사를 거부하고 이정현 대표가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이제 와 야권의 주장을 순순히 들어주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여권이 더 수용하기 힘든 카드는 법무부 장관의 교체로 보인다.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지휘할 법무부 장관이 야권 성향 인사로 교체되면 박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릴 수 있다. 박 대통령을 직접 소환 조사하거나 청와대 압수수색을 추가로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에선 총리에게 전적으로 임면권을 넘기기보다 여야 협의 과정을 거쳐 개각이 이뤄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총리 역시 여야 합의로 추대된 만큼 국회 의견을 무시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여야가 국회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듯 각 부처를 두고 정당별 몫을 쪼갤 수 있다. 사실상 내각제 실험인 셈이다.

 국회는 개원 때마다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한 달 넘게 협상하기 일쑤였다. ‘부처 쪼개기’에 합의하더라도 여야가 부처를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마라톤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국정 혼란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대목이다. 여야 간 정책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내각제 실험이 본격화되면 정책 혼선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외교안보는 대통령이, 경제·사회 분야는 총리가 총괄할 경우 그 경계를 두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뜨거운 감자’였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만 하더라도 배치 자체는 안보 사안이지만 배치 부지를 둘러싼 주민 갈등은 국내 문제로 볼 수 있다. 만약 외치(外治)와 내치(內治)가 중첩된 현안을 두고 박 대통령과 신임 총리의 견해가 다를 경우 국정 ‘투 톱’의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총리의 통할권이 어디까지인지, 개각 때 국회와 상의해야 하는지’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행해보지 않아 (나도) 잘 모른다”며 “단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국회가 감시기구로 (총리에게 개각과 관련해) 요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헌법이란 지도에 없는 길 위에서 여야가 ‘협치(協治)의 나침반’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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