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성호]1592년 그리고 경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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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얼마 전 TV에서 ‘임진왜란 1592’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임진왜란이야 영화와 TV에서 질리도록 다룬 이야기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 무렵까지 일본은 500회가 넘게 한반도를 침략했다. 임진왜란 발발 9년 전인 1583년 율곡 이이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선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 2명은 침략 가능성을 놓고 정반대 내용을 보고했다. 선조와 대신들의 선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 내용 그대로다. ‘설마 일어나겠느냐’는 불감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3년 전 한반도 주변에는 유독 지진이 잦았다. 그해에만 93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지진을 관측한 이래 최다였다. 리히터 규모 4.9의 지진이 인천과 전남 앞바다에서 두 차례나 일어났다. 역대 한반도에서 관측된 지진 가운데 네 번째(2013년 기준)로 강한 것이었다. 동아시아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이어졌다. 전남 해역 지진 하루 전 중국 쓰촨(四川) 성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 북부 쿠릴 열도에서도 규모 7.2의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잦아지자 사람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전문가들은 어김없이 “한국도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철저한 대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규모 4.9 지진에 시끄럽던 여론은 얼마 뒤 잠잠해졌다. 2013년 한 해 동안 평년의 두 배에 육박하는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수많은 통계자료 속에 묻혔다.

 당시 기상청을 담당했던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고백하건대 지진은 보도 우선순위에서 뒷전이었다. 태평양 먼바다에서 태풍이 한반도를 향해 살짝 방향을 틀어도, 초여름 수은주가 33도에 육박해도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지진은 말 그대로 반짝이었다. 그때 기자는 “언젠가 한국에서 큰 지진이 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전했다. 하지만 그 언제가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안전처까지 만들었지만 지진 대책은 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전체 재정계획을 볼 때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예산안을 보면 우선순위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2015년부터 2년간 국민안전처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지진 관련 예산은 총 91억 원. 최종 확정된 예산은 4분의 1도 안 되는 약 21억 원에 불과했다. 안전처가 처음 검토한 예산(약 1300억 원)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약 56억 원이 반영됐다. 안전처가 제출한 예산(251억 원)의 약 5분의 1이다.

 정부는 손사래를 치겠지만 아직도 안전은 정부 정책 중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사실이다. 여성과 노인 등을 상대로 하는 강력범죄가 늘자 우범지역에 폐쇄회로(CC)TV를 집중 설치하려고 세운 예산 336억 원은 전액 삭감됐다. 보행자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회전 교차로 설치 등 교통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도 230억 원 중 절반가량(130억 원)만 반영됐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불세출의 영웅 덕분에 나라를 지키고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진은 10명, 아니 100명의 이순신 장군도 막을 수 없다. 찰나의 순간을 덮치는 지진과는 어떻게 싸울 방법도 없다. 이제 10만 양병설 같은 지진 대책이 필요하다. 1592년의 아픔을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임진왜란 1592#지진#경주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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