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는 멍청한 금발 아닌 섹시한 좌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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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탄생 90주년 맞아 재조명… 흑인 인권 옹호-핵실험 반대
쿠바 카스트로 공개 지지하기도… BBC “일기엔 시인 소양 엿보여”

‘섹스 심벌’ 메릴린 먼로가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먼로가 모델로 활동하던 시기인 24세 때 찍은 사진이다. 동아일보DB
‘섹스 심벌’ 메릴린 먼로가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먼로가 모델로 활동하던 시기인 24세 때 찍은 사진이다. 동아일보DB
‘섹스 심벌’ 메릴린 먼로(1926∼1962)가 정치적으로 매우 진보적이었으며 사려 깊고 문학소녀의 면모를 지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일 먼로 탄생 90주년을 맞아 ‘멍청한 금발’, 남성 편력 등의 이미지에 가려진 먼로의 또 다른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타임은 남캘리포니아대(USC) 역사학 교수 출신 작가 로이스 배너가 쓴 ‘메릴린: 열정과 역설’(2012년)을 인용해 먼로의 좌파 성향을 공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먼로는 출생 당시 미국이 대공황을 겪었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다른 사람들의 집을 전전했다.

먼로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흑인 밀집지역에서 살았던 경험을 통해 인종, 계층 등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게 됐다. 먼로는 영화 촬영장에서 진보 서적을 읽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섹스 심벌의 매력이 훼손될까 봐 책 읽는 모습을 들키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1950년대 초에는 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이 한창이던 시절이어서 진보 서적을 가까이 하는 것이 위험하기도 했다.

먼로는 1956년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한 후엔 더 적극적으로 진보 목소리를 냈다. 남편 밀러는 매카시즘으로 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출석해야 했으며 1953년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미국 현실을 비판한 희곡 ‘시련’을 쓸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먼로는 1960년 핵실험 반대 단체의 할리우드지부 창립 회원으로 가담했다. 흑인 인권운동 단체들도 적극 후원했다.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던 동갑내기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먼로는 단 한 번도 정치 성향 탓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작가 배너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는 그를 멍청한 금발 정도로 치부한 것”이라고 전했다.

2010년 출간된 먼로가 직접 쓴 일기를 읽으면 그가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먼로의 일기는 출판을 목적으로 쓴 게 아니기 때문에 그의 솔직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일기를 통해 드러난 먼로의 모습은 생각이 깊고 시인의 소양도 갖췄다.

1942년 첫 남편인 제임스 도허티와 결혼한 먼로는 “마음의 큰 단지가 안도감을 찾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며 글쓰기에서 위안을 찾기 시작했다. 유명배우로 성공한 1950년대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내 힘으로 해낼 것이다. 분석적으로 일할 수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먼로는 현재의 감정, 분위기 등을 글로 전할 때 신중했으며 주로 간결한 단어를 선택했다.

그러나 세 번째 남편인 극작가 밀러가 먼로와의 결혼에 실망했으며 아내를 창피하게 생각한다고 쓴 글을 발견한 뒤엔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먼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생에서 배우고 난 뒤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다는 게 매우 두려웠다”며 “내일부터 내가 가진 모든 것인 나 자신을 소중히 하겠다”고 일기에 적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메릴린 먼로#섹스 심벌#진보#주간지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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