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노동개혁 논쟁, 이제는 한국노총이 마무리할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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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 말 노사정이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기본 합의문을 채택한 뒤 결렬과 농성 등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대타협의 긴 여정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한국노총이 18일 노사정위원회 복귀 논의를 위해 열었던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강경파의 물리적 저지로 복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26일 이를 재논의하기로 하였지만 결국은 복귀할 것이라는 예측이 다소 우세한 것 같다. 한국노총 내부 강경파의 반대가 민주적 절차까지 내팽개칠 정도로 거칠었지만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를 더이상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이 계속해서 강경하게 대화의 장을 거부한다면 노동개혁 실패와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후폭풍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자. 갈수록 악화되는 대내외 경제여건과 정체된 고용률, 그리고 닫혀버린 청년고용의 문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내용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해야 할지, 선결되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협상하고 실행 계획을 만들어야 할 노사정이 한국노총의 반대로 대화의 문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조합원 중심적인 이해관계만 반영할 뿐 노동시장에서 소외되어 있는 저소득 비정규 취약근로자와 고용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청년세대를 아우르지 못하는 한국노총에 대한민국의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여 정부, 경영계와 협상하고 합의를 도출해낼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4월 노사정대타협 결렬 이후 한국노총,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노총 내부의 강경파가 보여준 소아병적 행태는 노총의 사회적 책무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노사정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 한국노총으로서는 중대한 존재적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특정 조직원 집단만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전체 근로자들을 대변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한국노총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역할이라면 한국노총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부와 경영계의 양보와 타협을 견인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그러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지금까지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과정도 넓은 의미에서는 협상국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비록 결렬이라고 하지만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개편 및 임금피크제 도입 등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핵심 현안에 대해서는 비록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두 의견 합치에 이르지는 못했어도 개혁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담대한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임금피크제의 경우 이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청년고용 확대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정부와 경영계의 통 큰 채용투자와 구체적이고 명확한 담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규제 합리화가 기업에만 유리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불과하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남용을 줄이고 근로자들에게 좀 더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근로조건 개선 방안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정부와 경영계에 요구하고 관철하여야 한다.

취업규칙 변경과 일반해고의 문제도 노동의 유연성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합리적 개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노동개혁의 목표가 우리 노동시장과 기업에 만연한 비능률과 불합리, 그리고 변화를 거스르는 경직성을 해소하여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이고 근로자들 간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데 있다면 한국노총이 우려하듯이 근로조건을 악화시키고 조합원을 쉽게 해고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매도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청년고용과 연계시켜 그 필요성을 홍보하는 정부의 주장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노총은 정부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용자 측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대안 마련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대안 없는 무조건적 반대, 무책임한 선동보다는 구체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통해 협상과 타협을 수행하는 모습에서 우리 국민은 한국노총의 리더십을 확인하고 신뢰를 보낼 수 있다. 그것이 노동개혁의 과정에서 방관자로 전락하고 있는 경영계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길이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한국노총이 더 늦지 않게 국민에게 시원한 희망의 바람이 되어 국민의 땀과 고통을 씻어주길 바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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