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치명적 한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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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주장하는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수 증가, 여소야대 일상화
특정권역서 0명 선출 한계 노출
당권 장악 권력자의 전리품으로, 지역구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전락한 비례대표제
의원 정수 확대 논의하기 전 선정 방법과 기능 혁신이 먼저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폭염만큼이나 뜨겁다. 야당은 현재의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독일식)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전국을 인구 비례에 따라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의석수(지역+비례)를 배정한 뒤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선거제도는 정치 게임의 주요 기본 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짓는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대의 민주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야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둘러싸고 현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검토와 함께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다. 특히 새 제도의 부작용이나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면서 장점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몇 가지 치명적 한계가 있다. 첫째, 의석 배분 과정에서 초과 의석이 발생해 의원 정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제도에서는 정당이 권역에 배당된 의석수보다 지역구에서 의석을 더 많이 얻으면 그 의석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을 기준으로 총 300석(지역구 246명, 비례 54명)을 이 제도에 적용해 시뮬레이션해 보면 총 24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가령 인구 비례에 따라 34석이 배정된 호남-제주에서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 전신)은 의석 배분 기준 70.8%의 정당득표율에 따라 23석을 할당받지만 지역구에서 28석을 차지해 5석의 초과 의석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새누리당도 부산-울산-경남에서 26석을 할당받지만 지역구에서 36석을 차지해 10석의 초과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비례대표 의석을 100명으로 늘려도 4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둘째, 일부 권역의 경우 특정 정당은 지역구 의원만 있지 비례대표 의원은 단 한 명도 채우지 못한다. 즉 민주당은 초과 의석이 발생한 서울과 호남에서, 새누리당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지 못하는 식이다. 권역을 대표하는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에서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모순된 일이 발생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셋째, 여소야대가 일상화되어 입법 교착 상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가령 19대 총선 시뮬레이션 결과, 초과 의석을 포함해 총 324석 중 새누리당은 152석(46.6%)을 얻어 과반에 미달한 반면, 야권(민주당, 통합진보당, 자유선진당)은 169석(52.2%)을 획득해 과반을 넘었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면 정당 간에 대화와 타협이 일상화되어 합의 정치가 도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19대 총선을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내년 총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다. 분명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망국적 지역 구도를 깰 수 있으며, 양당 독과점 체제를 무너뜨려 다당제 출현을 용이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시뮬레이션 결과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5석, 민주당은 영남에서 19석을 차지하고 통진당은 30석을 더 얻게 된다.

문제는 의원 정수가 크게 늘어나고, 특정 권역에서 비례 대표가 선출되지 않으며, 여소야대가 일상화되어 정국 운영이 쉽게 교착되는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큰 숙제다. 야당에서는 그 대안으로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릴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자는 것 또한 순서가 잘못됐다. 현재 비례대표제는 당권을 장악한 권력자의 전리품으로 전락했고 계파 정치의 온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전문성과 소수자 배려를 명분으로 내건 비례대표 의원은 사실상 ‘지역구 의원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로 변질됐다.

비례대표 의원 정수 확대를 논의하기 이전에 비례대표 선정과 기능 혁신이 먼저다. 야당은 새 제도의 장점만 부각시키지 말고 한계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여당도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여야 동시 오픈프라이머리 실시를 위해서라도 우리 실정에 맞는 방안을 토대로 통 큰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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