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철 기자의 파넨카 킥]북한축구, 심상찮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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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입니다. 잔디가 없는 맨땅에서도 열심히 공을 찹니다.”

분단 70년을 맞아 러시아에서 독일까지 19박 20일간의 대장정을 펼친 ‘유라시아 친선특급’에 참가했던 이병무 평양과학기술대 치과대학 설립학장(66)이 전해 준 북한의 축구 열기다. 러시아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난 그는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자체 토너먼트 대회를 연다”며 “프로축구 선수를 했던 뉴질랜드 출신의 영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주고 인기를 끈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친선특급에 참가한 얀 야노프스키 평양 주재 독일대사관 2등 서기관(30)은 “북한의 조선중앙TV가 유럽 축구 경기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야노프스키 서기관은 “지난해 독일대사관은 북한 축구 해설가 등을 대상으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며 “독일의 유명 해설가가 북한 해설가들에게 ‘생동감 있게 해설하는 방법’ 등을 교육했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에서 3일간 열린 워크숍에는 북한 전역에서 온 16명의 해설가가 참여했다”고 전했다. 야노프스키 서기관은 “과거 북한 축구 중계는 선수 이름과 ‘공을 찼습니다’ ‘빗나갔습니다’ 등 상황 설명이 전부였다”며 “그러나 해설가 교육 후에는 선수의 배경 설명과 경기 흐름에 대한 분석 등이 첨가돼 해설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직접 축구 경기를 참관할 정도로 뜨거운 축구 열기를 등에 업은 북한 남자 축구대표팀이 2015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9위 북한은 2일 일본(FIFA 랭킹 50위)에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과거 북한은 국제 대회에서 선제골을 내준 뒤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전반 3분 일본에 골을 내줬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수비를 두껍게 하면서 역습으로 경기를 풀어 나갔다.

김창복 북한 감독은 후반전에 일본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자 공중볼 다툼에 능한 공격수 박현일을 투입해 경기 흐름을 바꿨다. 박현일은 후반 33분 헤딩 패스로 이혁철의 동점골을 도왔고 10분 뒤에는 헤딩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경기 후 김 감독은 “전반을 0-1로 졌지만 선수들에게 우리 ‘템포’대로 가면 이길 수 있다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정신력’만을 강조하던 과거의 단순한 전술에서 벗어나 체력 싸움이 관건인 후반전에 대비해 체계적인 전략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북한은 젊은 선수들의 패기와 기동력이 조화를 이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동아시안컵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24.4세로 한국(24.2세)에 이어 두 번째로 젊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은메달 멤버’ 9명이 포함돼 조직력도 안정적이다. 북한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등을 포함해 최근 A매치에서 4연승을 달리고 있다. 6월에는 안방인 평양에서 우즈베키스탄을 4-2로 꺾는 저력을 보여줬다. “우리는 (동아시안컵에) 우승을 하러 왔다”는 김 감독의 말처럼 북한이 동아시안컵을 통해 동아시아 축구의 ‘복병’으로 떠오를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은 북한과 9일 동아시안컵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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