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야구 꿈나무 학부모들 유혹하는 ‘야구 비밀과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7월 27일 05시 45분


엘리트 스포츠에 들이닥친 사교육 열풍
지도자 검증 안된 야구과외, 폼 망칠수도
프로행 실패 땐 앞날 막막…경쟁 내몰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4년도 초중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약 18조2000억원이다. 비공식적 집계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30조원대로 추정된다.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2000원이고, 전체 학생 가운데 68.6%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5.8시간이다. 우리 ‘삶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사교육비와 터무니없이 오르는 집값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점은 알지만,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교육이다.

최근 야구선수를 둔 학부모의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생야구선수의 부모가 ‘야구 과외’를 위해 사람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예체능계 대학 진학을 위한 과외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엘리트 스포츠에도 사교육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줄은 몰랐다.

● 학부모는 왜 야구 과외를 시키려고 하나?

수도권 고교 야구부에 소속된 학생의 부모는 지금 심각하다. 2학년 아들의 인생이 좌우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다. 3학년 봄까지 프로팀 스카우트나 대학팀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면, 그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온 야구를 포기해야 한다. 다시 공부해서 다른 진로를 찾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는 것을 잘 안다. 타격을 지도해줄 전문가를 찾고 있다. 소속팀 감독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알음알음으로 수소문한 결과, 다른 학부모들도 몰래 야구 과외를 시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 아들이 남보다 앞서지는 못해도, 최소한 뒤떨어지게 해선 안 되겠다고 부모는 결심했다.

한 프로팀 스카우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요즘 그런 일이 많다”고 말했다. 많은 선수들이 소속팀 감독과 코치 몰래 과외를 받고 있으며, 어떤 고교팀에선 감독이 과외 선생님을 찾아주기도 한다고 했다. 이 스카우트는 “이런 것들이 문제인 줄은 모두가 알지만, 어린 학생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결정을 막을 방법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야구 비밀과외가 가져올 문제점은?

그 학생이 전문가를 찾아서 야구 과외를 받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그 선수의 스윙이나 타법이 달라지면,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소속팀 감독과 코치다. 팀 스포츠의 특성상, 결정하는 감독과 선택을 받는 선수 사이에는 신뢰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자신을 제쳐두고 다른 곳에서 야구를 배워온 선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2세 야구선수를 둔 프로야구 출신들이 자식의 소속팀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독을 중심으로 모든 구성원이 함께 노력해 승리를 쟁취하는 팀 스포츠인 만큼, 신뢰와 믿음이 깨지면 서로가 불행해진다. 더욱이 학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라는 미묘한 변수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지금 대다수 학교는 감독 외에도 코치나 프로야구 출신 인스트럭터를 채용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굳이 따지지 않겠다.

학교 지도자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비밀과외를 받는다는 것은 지금 지도자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소리로 들릴 것이 뻔하다. 신뢰가 깨지면 감독의 선택권은 선수와 학부모로부터 의심받고, 팀을 이끄는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없기에 분란이 불가피해진다. 최악의 경우 선수가 팀을 떠나거나 몇몇 학부모들이 합세해 지도자를 몰아내는 일이 벌어진다. 요즘 학원스포츠에서 흔히 생기는 일이다.

● 객관적 지도자 검증 장치가 없어 문제다!

물론 과외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최근 어느 대학교 졸업반 선수의 얘기다.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면 야구를 포기해야 하는 그에게는 ‘피칭 입스’ 증세가 찾아왔다. 공을 던지지 못하는 심리적 병이다. 많은 방법을 써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애가 탄 감독이 먼저 나섰다. 주변 야구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감독은 직접 원로 야구인 A에게 연락해 해당 선수를 봐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 A는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워낙 간곡하게 부탁하자 선수를 만나 면담을 했다.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그 선수는 입스 증세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다.

최근 양승호 전 감독이나 김용달 전 코치가 재능기부를 통해 여자야구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나 KBO가 주관해 프로야구 스타 출신들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야구교실은 장려해야 할 과외다. 문제는 이런 과외만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좋은 지도자도 많지만, 골프처럼 특별히 검증된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지도자의 능력을 검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잘 지도해서 성공한 선수의 사례나 주위 학부모의 평판만이 역량을 평가해주는 유일한 자료다. 주관이나 소문에 영향을 받기 쉽고, 객관적이지 않다.

만일 비싼 돈을 내고 엉터리 과외를 받는다면 그 피해는 너무도 크다. 한 번 망가진 폼을 원위치로 되돌리는 것은 떨어진 실력을 올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의료업계에서 돌팔이가 문제가 되는 현상과 흡사하다.

●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꿈나무들이 희생되는가?

2013년 미국대학체육협회(NCAA)에서 한 가지 통계를 발표했다. 미국의 고교야구선수의 대학 진학률과 프로 입단율을 집계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고교야구선수는 47만명, 졸업반은 13만5000여명이었다. 이 가운데 9271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률은 6.9% 정도다. 대학선수가 프로 드래프트에서 낙점 받는 경우는 2013년 기준으로 678명이었다. 결국 13만5000명의 고교야구 졸업반 선수 중 약 0.5%만이 마이너리그를 포함한 프로를 경험하게 됐다. 이들 가운데 메이저리거가 탄생할 확률은 더 떨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확률’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프로나 대학에 가지 못한 야구선수들의 장래를 걱정한다는 언론 보도는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에 야구 실력이 떨어지면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 아쉽게도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대한야구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66개의 고교팀이 있다. 등록선수는 2351명이다. 지난해 졸업생 614명 가운데 61명이 프로의 지명을 받았다. 10%가 프로행에 성공했으니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학 진학 후 다시 프로에 지명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높은 확률이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야구를 중도에 포기한 선수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리틀야구부터 시작해 이미 중학교를 거치면서 수많은 중도 탈락자를 만들어내고, 이렇게 경쟁에서 이긴 선수들마저 결국 야구를 포기하는 90%에 포함되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좋아서 야구를 시작한 꿈나무들이 어느 순간 일상 또는 교실로 돌아가지 못하는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이런 선수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야구 비밀과외보다는 부족한 학업에 대한 공교육의 보충수업일지 모른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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