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無爲의 조직’ 국립현대미술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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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문화부
손택균·문화부
‘미술관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특수독립법인 전환.’

국립현대미술관에 얽힌 문제가 불거지면 조건반사처럼 나오는 이야기다. 10여 년 전부터 논의가 시작돼 지난 정부와 현 정부가 잇달아 추진했지만 법안 상정과 폐기를 거듭하는 어정쩡한 상황만 이어지고 있다.

조직 위상이 불투명하다 보니 구성원들은 맡은 바 업무에 몰두하기 쉽지 않다. 법인화 추진 이후 채용된 서울관의 계약직 학예직원과 과천관의 정규직 학예직원 간 업무교류 단절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굳이 시간 들여 찾아가 보라고 주변에 권할 만큼 내실 있는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나기 어렵게 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법인화 논의를 주제로 6년 전 열린 토론회 자료를 찾아봤다. 미술계 인사로 불릴 만한 참석자들은 대개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요지는 예산 확보의 어려움, 직원의 고용 안정성 저해, 전문성 약화 등이었다.

해외 유수 미술관이 대부분 법인체로 운영된다고 해서 꼭 똑같이 따를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일면 옳다.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은 모두 대규모 컬렉션 또는 지원금 기부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내용물에 앞서 껍데기 공간부터 마련해 놓고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선행 모델 없는 제 나름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관장 자리를 공석으로 둔 채 반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최근 상황을 취재하면서 확인한 것은 법인화를 경계하며 잔뜩 움츠러든 무위(無爲)의 조직이었다. 현대미술은 거침없이 새로운 일을 저지르고 뜨거운 논란을 발생시킴으로써 존재 가치를 얻는다. 그 논란의 포화를 뚫고 살아남는 결정체가 미술사의 표석으로 후대에 남는다. ‘새로운 시도를 절대 앞장서서 하지 않는 공무원 조직’은 처음부터 현대미술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작품 설치하는 데 거쳐야 하는 결재 절차가 왜 이렇게 복잡한지….” 지난해 한 기획전에 참여한 작가의 말이다.

지원 없이 성과 없다? 안이한 핑계다. 대학원 논문 쓰듯 뜬구름 잡는 어휘를 늘어놓으며 ‘미술에 대한 전문지식에 무지몽매한 일반 관람객’을 가르치려 들고 있지 않은지, 구태의연한 과거 전시 형식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함께 즐길 방법을 절실히 고민해 봤는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늘 한적하다. 밥그릇 지키기와 파벌 줄 서기의 불편한 긴장감을 방문객이 체감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조직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정립하지 않는 한, 법인화를 하든 말든, 새 관장이 누가 되든,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는 밝지 않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국립현대미술관#효율#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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