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압록강에서 열하까지’ 펴낸 이보근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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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연행록 베이징묘사에 무릎 탁… 붓으로 그린 풍경이 칼보다 날카로워”

2007년 이후 압록강에서 베이징까지 연행의 노정을 완주한 이보근 씨가 총수(蔥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보근 씨 제공
2007년 이후 압록강에서 베이징까지 연행의 노정을 완주한 이보근 씨가 총수(蔥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보근 씨 제공
국제민간경제협의회(IPECK) 중국부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베이징사무소장을 지낸 중국전문가 이보근 씨(76)의 ‘압록강에서 열하까지’(전 2권·어드북스·사진)는 18세기 조선의 3대 연행록인 김창업의 ‘연행일기’,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답사기다.

이 씨는 2007년 여름 800쪽이 넘는 ‘을병연행록’을 읽고 무릎을 쳤다. 이 씨는 “18세기 베이징 모습을 세밀한 관찰력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담긴 방대한 기록으로 남긴 것이 놀라웠다. KIEP 시절 베이징에서 4년간 지냈지만 헛살았다는 느낌이 들어 부끄러웠다”고 했다.

연행록에 눈을 뜬 이 씨는 열하일기, 연행일기도 꼼꼼히 읽고 공부했다. 2007년 가을 “중국에서 보낸 시간을 더이상 초라하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배낭을 싸고 집을 떠났다. 그는 그해부터 올 5월까지 매년 한 차례씩 비행기로 베이징과 선양(瀋陽)으로 날아가 모두 142일 동안 답사했다. 가까운 거리나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의 험난한 고갯길은 걷고, 먼 거리는 삼륜차, 택시, 버스를 이용해 대부분 완주했다. 그는 “중국이 급속도로 발전해 마을이 사라지거나 지명 자체가 바뀌어 길을 헤매다 고생도 했다. 그래도 갈 때마다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성취감에 즐거웠다”고 말했다.

책을 읽으면 김창업, 홍대용, 박지원이 앞장서고 이 씨가 옆에서 손을 잡고 함께 연행길을 걷는 듯하다. 책에서는 같은 사물, 지역도 세 사람이 각자 개성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묘사했는지 비교해서 보여준다. 여기에 이 씨가 답사한 현재 중국 풍경을 보충했다.

이들은 실제 문인이었지만 연행사에는 ‘군관’의 신분으로 따라갔다. 이 씨는 책에서 “그들이 품고 간 것은 칼이 아니라 부드러운 붓이었지만 그것들은 다 칼보다 날카로웠다”고 평했다. 이 씨는 “김창업은 문장만이 아니라 시에도 능했고 홍대용은 거문고를 즐겨 탔으며 중국어도 잘했다. 박지원은 시적인 표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문필을 휘둘렀다”고 평했다.

이 씨는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을병연행록’에 ‘간졍동(乾淨洞)’으로 기록된 베이징 서남구역 간징후퉁(甘井胡同)을 추천했다. 이곳은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없던 시절 홍대용이 중국 선비들과 필담을 나누며 학문적 교류를 나눈 곳이다. 홍대용은 필담 내용을 ‘회우록’으로 엮어 조선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씨는 을병연행록 기록을 좇아 간졍동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그는 “최근 두 차례 한중 정상회담에서 매번 두 나라 간 ‘인문교류’ 강화를 강조했다. 한중 지식인 교류의 첫걸음을 내딛은 간졍동을 독자들에게 안내하고 싶다”고 했다.

이 씨는 16일 다시 중국으로 답사를 떠난다. 그는 “책을 냈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압록강에서 열하까지#압록강#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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