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철환]10월 펼쳐질 인간드라마,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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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소설가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
이철환 소설가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
이웃집에 살았던 아저씨 이야기다. 아저씨는 안마 일을 하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아저씨는 오후 11시만 되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창문을 활짝 열고 아주 큰 목소리로 노래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고드름장아찌 같은 얼굴로 아저씨를 바라보곤 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 내지 말라고 화내는 이들도 있었다.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머리만 조아릴 뿐 노래를 멈추진 않았다. 노래는 ‘등대지기’였다. 같은 노래만 계속 불렀다. 어떤 날은 열 번을, 어떤 날은 스무 번을 불렀다.

그 노래는 아저씨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야 끝이 났다. 아줌마도 아저씨처럼 시각장애인이었고, 안마 일을 했다.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가장 크게 들릴 때 아줌마는 지팡이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아저씨 노랫소리는 앞을 못 보는 아내에게 등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아저씨는 손가락 마디 끝을 다섯 개 잘라내야 했다. 안마 일을 오래 한 탓에 손가락 관절이 상할 대로 상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안마 일을 그만둬야 했고 한동안 절망에 빠져 지냈다.

수입이 이전보다 준 아저씨 부부는 방값이 더 싼 동네로 이사해야 했다.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용달차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너하고 헤어지는 게 제일 슬프다…. 어려운 일 있어도 우리 굳세게 살자.”

아저씨 목소리에 눈물이 어렸다. 참았던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달 후쯤 아저씨네 집을 찾았다. 아저씨 집은 쪽방이었다.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기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방마다 벽이라고 있지만 베니어합판으로 겨우 갈라놓았을 뿐이야…. 옆방 아기 엄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에게 동화책을 읽어줘. 어찌나 또렷하게 들리는지 나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

아저씨는 잠시 아기 엄마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기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 속엔 매미가 나오고, 귀여운 아이가 나오고, 느티나무가 나와. 그런데 동화책 속엔 매미 그림도, 귀여운 아이 그림도, 느티나무 그림도 없을 거야. 왜냐면 옆방 아기 엄마도 시각장애인이거든…. 손끝으로 점자를 더듬어가며 아기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거야. 옆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눈물이 나올 때도 있어. 인간이 얼마나 강한지 아기 엄마를 통해 배운다.”

아저씨 눈가엔 눈물이 어렸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나는 아저씨를 떠올린다. 아저씨에게 받은 위로와 감동을 생각한다.

다음 달 18일부터 24일까지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도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감동을 줄 것이다. 강한 의지의 장애인 선수들은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이철환 소설가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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