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경배]상고법원 역할 늘려 대법원 부담 줄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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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배 뉴욕 주 브루클린 지방법원 판사
전경배 뉴욕 주 브루클린 지방법원 판사
필자는 1999년 미국 뉴욕 시 형사법원 판사로 임명된 후 뉴욕 주 브루클린 지방법원 형사부 수석부장판사로 일하는 현재까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사법제도를 관심 있게 지켜봐 왔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상고심 제도의 개혁과 관련해 미국의 상고 제도와 그 개혁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9명은 연 1만여 건의 상고 사건 중 80여 건만을 선정해 심리하고 있다. 사건 선정은 전적으로 대법관들에게 맡겨지며, 선정된 사건은 치열한 토론과 깊이 있는 연구를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고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비록 그 수는 적더라도 미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20세기 이전에는 한국 대법원처럼 상고된 모든 사건을 심리하느라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태프트 대법원장은 “당사자 사이에 정의를 세우는 데는 두 번의 재판으로 충분하다. 대법원의 역할은 공익과 관련된 중요한 판결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 미리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대법원이 스스로 사건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1925년 사법부법(Certiorari Act)의 시행으로 상고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연방대법원의 사건 선택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었다.

한국 대법원은 현재 연 3만6000여 건의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수이다. 한국 대법원의 사건 부담 개선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하급심의 잘못을 대법원이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상고허가제를 바로 도입하기 어렵다면,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사건들은 대법원에서 심리하고, 그 밖의 사건들은 상고법원에서 담당하며 국민의 권리 구제를 해 주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법관 증원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건들을 수십 명이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루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3억 인구의 미국에서도 지난 200년간 대법관 수가 10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한국이 미국식 배심제와 유럽식 참심제를 혼합한 국민참여재판을 고안해 훌륭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적 현실에 맞는 상고법원을 통해 대법원의 역할을 되찾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도 빈틈이 없는, 정의로운 나의 모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경배 뉴욕 주 브루클린 지방법원 판사
#상고법원#대법원#사건#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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