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형주]두려움의 극복, 세계수학자대회를 마치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서울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서울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전 세계 수학자 5000여 명이 구름처럼 서울에 몰려들어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시상식을 지켜본 게 며칠 전이다. 이 필즈 메달에는 아르키메데스의 얼굴 그림과 함께 라틴어로 “자기를 극복하고 세상을 움켜쥐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서울에서 새로 탄생한 2014년 필즈상 수상자 기자회견에서 새삼 이 글귀가 다시 회자되었다.

이날 관심의 초점은 미디어에도 대대적으로 소개된 역사상 첫 여성 필즈상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카니 교수에게 모아졌다. 그동안 출현한 52명의 수상자가 모두 남자라서 여성 수상자의 출현을 고대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어렸을 때는 수학을 싫어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잘 못한다고 생각했던 탓이라는데, 그래서인지 그녀는 “재능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또 “두려움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주위의 격려가 주효했다”고도 했다. 또 다른 수상자인 마르틴 하이러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아주 자연스럽고 쉬운 것”이라고 했는데, 수학자였던 아버지의 도움과 영향이 컸다 했다.

수학 공부를 힘들어하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자신의 미래와 수학 공부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채 사지선다형의 문제풀이만 반복하니 지겨울 것이고, 자기가 잘 못한다는 두려움을 극복할 방법이 없는 것이리라. 프랑스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 누구나 보아야 하는 바칼로레아의 수학시험은 전적으로 서술형이어서 본인이 사고를 전개한 만큼의 부분점수를 받는 게 가능하다. 한 번 실수로 다 틀리게 된다는 두려움에서 건져주려면 일단 이런 평가방식을 도입해 보는 게 어떨까.

탄광촌에서 자라면서 당연히 광원이 될 것으로 여겨지던 아이들이 어느 날 하늘로 치솟는 스푸트니크를 보고 인생의 꿈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옥토버 스카이’(10월의 하늘)는 동기부여와 이를 통한 두려움의 극복 과정을 보여준다. ‘그걸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열병에 걸려서 독학으로 로켓 제작에 몰입하는 주인공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받지만, 학교 여선생님은 이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주인공이 무작정 편지를 보냈던 당대의 유명한 로켓 과학자는 답장을 보내 이들을 격려하며 멘토링한다. 결국 이들은 전국대회에서 구름 위로 로켓을 발사하며 주위를 놀라게 하고 우승한다. 실화에 기초했다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탄광촌에서 탈출해서 훗날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가 된다.

‘옥토버 스카이’에 나오는 두 명의 위대한 멘토, 즉 고등학교 여교사와 로켓 과학자는 두려움 극복의 주요 동인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필즈상 수상자인 만줄 바르가바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좋아했는데 어머니의 멘토링이 주효했다고 했다.

학교의 교육 과정만 가지고도 충분히 바쁜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의 꿈과 지향을 논하는 일이 사치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렵다는 수학 공부이니만큼 동기부여는 큰 차이를 만든다. 천체 망원경으로 별 보는 재미에 빠진 아이에게, 뉴턴이 천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미적분을 만들었다고 알려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밤새워 미적분을 공부하게 된다. 첫사랑의 열병 같은 꿈을 가진 아이들은 이루지 못할 게 없으니까. 게다가 역할모델, 즉 우상이 있으면 두려움을 넘는 데 큰 힘이 되는데, 탄광촌 아이들에게는 로켓 과학자가 그런 역할을 했다.

감수성이 강하고 쉬이 상처받는 아이들은 그들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확인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여교사 미스 라일리가 심어준 것처럼, 자기 옆에 든든한 우군이 있다는 그 ‘든든함’은 두려움 극복의 지렛대가 된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서울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