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법원 ‘일제때 계약위반 ’ 日회사 선박 압류 판결 뒤엔… 3代 걸친 ‘78년 對日투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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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왕 “배상 받아내라” 유언… 아들, 日서 패소 충격에 뇌중풍 사망
손자, 변호사 56명 이끌고 20년 소송

일제 침략기에 맺은 선박 임대차 계약을 위반해 임대료는 물론이고 선박도 돌려주지 않은 일본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손해 배상을 받아낸 데는 중국 선박기업 소유주의 3대(代)를 이은 투쟁이 있었다.

1930년 선박회사 중웨이(中威)를 설립한 천순퉁(陳順通·사진)은 4척의 화물 및 여객선을 보유해 중국의 ‘선박왕’으로 불렸다. 초대 홍콩 행정장관으로 선박 해운회사를 경영했던 둥젠화(董建華)도 중웨이 설립 당시 천순퉁의 조수(助手)였다고 홍콩 밍(明)보는 전했다.

중웨이는 1936년 10월 일본 다이도(大同)해운에 순펑(順豊)호와 신타이핑(新太平)호 등 2척을 12개월간 빌려줬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임대료를 받지 못했고 선박의 행방도 묘연했다. 다이도 측은 일본군으로부터 ‘합법적으로 포획(징발)됐다’는 대답만 들었다.

천순퉁은 전쟁이 끝나고 1947년 국민당 정부와 주일 미군사령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 2척의 선박이 침몰된 사실을 알았다. 그는 1949년 사망하면서 아들 천차췬(陳恰群)에게 임종 자리에서 배상을 받아내라고 유언했다.

천차췬은 1961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3년이 걸려 돌아온 답변은 ‘합법 포획인지 확인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1970년 다시 소송을 제기했으나 4년 후 나온 시효가 소멸됐다는 답을 들었다. 천차췬은 분을 삭이지 못해 1992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천순퉁의 손자인 천전(陳震) 천춘(陳春) 형제는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 홍콩 미국 등의 변호사 56명으로 소송지원단을 구성해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송에 나섰다. 약 20년이 흘러 이들이 2007년 12월 1심 판결에 승소할 때는 지원단의 4분의 1이 사망한 상태였다.

결국 19일 상하이 법원이 저장(浙江) 성 성쓰(t泗) 현 마지산(馬跡山)항에 정박해 있는 미쓰이(三井) 상선(다이도 상선 승계회사)의 28만 t급 대형 선박 ‘바오스틸 이모션’호를 압류한다고 판결했다. 배를 빌려준 뒤 78년 만에 ‘선박 임대료와 선박 손실 보상료, 그리고 이자’ 등 20억 위안(약 1320억 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천춘은 재판 뒤 “태어난 후 온 집안 분위기는 이 선박 보상을 받아내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1일 오전 정례회견에서 “중국 측의 선박 압류는 1972년 일중 공동성명에 담긴 양국의 국교정상화 정신을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당시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중일 간의 손해배상 등에 관한 문제가 해결됐다’고 명시했다.

베이징=구자룡 bonhong@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선박왕#천순퉁#신타이핑호#순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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