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서양인이 콕 집어낸 ‘36계’속에 숨은 비즈니스 계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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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계학/카이한 크리펜도프 지음/김태훈 옮김/376쪽·1만6000원/생각정원

“삼십육계?” “줄행랑.”

안다. 이런 반응 식상하다. 제목이 ‘36계학’이라고 줄행랑부터 떠올리다니. 근데 고백한다. ‘부터’가 아니라 ‘밖에’ 모르겠다. 다행인 건 포털 사이트에서 쳐봤더니 첫 연관 검색어가 줄행랑이다. 무지해 슬퍼도 외롭진 않아라. 자위하자면, 이런 반응이 영 빗나간 건 아니다. 분명 줄행랑도 서른여섯 계책에 있다. 한자로는 ‘주위상(走爲上)’. 때론 도망치는 게 최선이란 뜻이란다. 36계인 줄은 몰랐지만, 익숙한 것도 꽤 된다. 일부러 성을 비워두는 ‘공성계(空城計)’나 스스로 상처 입히는 ‘고육계(苦肉計)’, 설명이 필요 없는 ‘미인계(美人計)’…. 아, 다시 한번 다행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다. 같은 동양권으로서 36계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이미 오랜 세월 녹아들어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비즈니스 전략가인 서양인 눈엔 다른가 보다. ‘천년 비서’인 삼십육계를 연구하면 기업을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설파한다. 흠, 개똥도 약이 된다더니. 코쟁이 동양고전 해석을 들어봐서 나쁠 건 없다.

먼저 주위상을 살펴보자. 저자는 한때 쫓겨났다 ‘돌아온 천재’ 스티브 잡스를 대표적인 경우로 꼽는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해 연구개발 아이템의 70%를 확 정리해버렸다. 당시 호평 받던 PDA(개인휴대정보기) ‘뉴턴’ 프로젝트도 단칼에 쳐냈다. 저자 해석대로라면 버겁던 싸움을 접고 도망친 셈이다. 그 뒤 새로운 전장을 개척해 아이팟과 아이폰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강한 기업은 항복할 때를 알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전투를 선택한다”고 조언한다.

얼핏 그럴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끼워 맞춘 기분이 들까. 다른 예를 보자. 스포츠브랜드 퓨마는 1990년대 나이키나 리복과의 경쟁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운동화로는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패션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사업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이를 ‘격안관화(隔岸觀火)’ 전략이라 부른다. 강 건너 불구경, 즉 행동하지 않은 게 훌륭한 선택이 된 본보기란다. 하지만 이거, 주위상에 더 가깝지 않나? 문제는 그뿐 아니다. 계책마다 설명으로 붙인 중국사도 어정쩡하다. 명나라 영락제를 피해 도망친 건문제가 승려로 숨어산 것(주위상)은 정설로 인정받진 못했다. 제갈량이 사마의의 공격에 성문을 열고 거문고를 탔다는 일화(공성계)는 삼국지연의에 나온다. 소설이지 정사는 아니다. 저자도 께름칙했는지 실명 빼고 촉 재상, 명 황제라 얼버무렸다. 서양에선 넘어갈지 몰라도 이건 좀 아니지 싶다.

물론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기업 경영에 36계는 꽤 짭짤한 격언으로 간직할 만하다. 다만 이렇게도 연구가 주관적인데 함부로 ‘학(學)’이라 부르진 마시길. 차라리 원제 ‘미소 뒤에 비수를 감추라(Hide a Dagger behind a Smile)’는 담백하기나 하지. ‘소리장도(笑裏藏刀)’라. 하지만 영 미소가 머금어지질 않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삼십육계#줄행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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