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달동네의 바리공주, 삶 대신 죽음을 선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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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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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박정윤 지음/347쪽·1만3000원·다산책방

다산책방 제공
다산책방 제공
“옛날 옛적 불나국이라는 나라의 왕비는 내리 여섯 명의 딸을 낳았지. 온갖 치성을 드려 일곱째도 낳았지만 결국 딸. 화가 난 왕은 일곱째를 버렸어. 한참 세월이 흘러 왕은 위독해졌고, 이를 치료할 사람은 일곱째 딸뿐. 왕비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일곱째를 찾았고, 딸은 불사약을 구해 왕을 구했지. 일곱째 딸의 이름은 ‘바리공주’. 이 이야기는 바리공주 설화로 불린다네.”

전국 각지에서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바리공주 설화. 작자 미상의 이 이야기는 ‘바리데기’ ‘오구풀이’ ‘칠공주’ ‘무조전설’ 등으로도 불려왔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 소설은 설화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설화에서 바리공주는 뒤늦게 자신을 찾은 부모를 만나 지극한 효행을 하지만, 소설 속 ‘바리’는 끝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혼자 떠돈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고, 애잔하다.

작품은 설화를 인천의 척박한 동네로 옮겨온다. 연탄회사 사장의 일곱째 딸인 바리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산파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인천으로 온다. 기찻길 옆 허름한 집에서 바리는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채 밑바닥 인생을 산다. 소설은 초반 바리가 태어난 과거와 성장해가는 현재를 교직하며 잔잔히 흐른다. 차분하지만 얼마간은 지루하다.

장편소설이지만 여러 단편을 묶은 듯한 느낌도 든다. 바리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장별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인천의 집창촌 ‘옐로우하우스’에서 일하는 연슬 언니, 그곳 여성들의 화려한 옷을 만드는 나나진, 굴뚝 청소를 하는 청하, 잡곡상을 운영하는 산파와 ‘토끼 할머니’ 등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이야기가 확장되고 인물들의 삶이 교차돼 작품은 풍성해진다. 바리공주의 애달픈 설화와 도시 변두리에서 곤궁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시공간을 넘어 매끄럽게 중첩돼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평온하게 지내던 이들의 삶은 급격히 출렁인다. 바리가 사실은 산파로부터 독초와 약초를 쓰는 비법을 배웠고, 이 기술을 통해 자의 혹은 타의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바리가 동네의 유지인 ‘하얀대문집 영감’을 독살한 사실이 점차 외부에 알려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설화에서는 바리공주가 불사약을 통해 타인을 살리는 역할을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타인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힘 있는 자들에게 억압당하며 좀처럼 삶의 희망을 찾기 힘든 서민들의 삶이, 스스로 죽음을 청할 만큼 위험하고 위태롭다는 것을 고발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제2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인 소설가 박범신의 평은 이렇다. “안정되고 감성적인 문체와 예민하게 끌어올린 문제의식, 우리네 밑바닥 삶의 디테일한 복원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버림받은 ‘바리’의 사랑과 그 좌절이 매력적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예술#바리공주#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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