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日군국주의 A급 전범의 속내를 파헤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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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호사카 마사야스 지음·정선태 옮김
708쪽·3만8000원·페이퍼로드

역겨운 멸시의 대상, 일본 근대사의 치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총리 겸 육군대신으로 전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1884∼1948)다.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처형됐던 그의 이름은 일본인들에게 전후 50년간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도조를 재평가한다는 미명 아래 그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998년 도조 히데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프라이드; 운명의 시간’은 일본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 왔고, 히데키의 손녀 도조 유코가 전쟁을 정당화한 소설 ‘일체를 말하지 말라’도 14만 부나 팔렸다.

도조 히데키의 삶은 근대 일본의 전개 과정과 일치한다.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열강으로 일본을 이끈 동력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 시리즈였다. 도조 히데키는 대일본제국의 공영을 만천하에 떨칠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패전 후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몰락했다.

저자는 “도조를 불편하고 역겨운 대상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문제 삼는 것은 근대 일본의 역사를 직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논픽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6년간 도조 히데키와 관련된 퇴역군인, 관료, 왕족, 친인척과 후손 등을 취재한 후 1979년 초판을 냈고, 2005년까지 꾸준히 재·개정판을 펴냈다.

“도조 히데키는 정치와 군사의 관계에 무지했고 국제법규에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군인이야말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 그는 국가를 병영으로 바꾸고 국민을 군인화하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여겼다. 그런 그는 적어도 20세기 전반의 각국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인물이었다.”

저자는 “왜 이러한 지도자가 시대와 역사를 움직였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나라가 가장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총력전 시대를 이끈 전쟁 지도자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한 과정에서 일왕의 역할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전쟁을 부추긴 재벌과 군부의 결탁에 관한 진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은 한계로 지적할 만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책의 향기#인문사회#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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