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지 기자 ‘미얀마의 봄’ 3信]언론에도 봄기운… 신문 1면마다 수치 여사 얼굴로 장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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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의 사진과 소식을 다룬 미얀마 언론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치여사의 사진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당명조차 쓸 수 없었다. 양곤=이승헌 채널A 기자 CANN023@donga.com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사진과 소식을 다룬 미얀마 언론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치여사의 사진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당명조차 쓸 수 없었다. 양곤=이승헌 채널A 기자 CANN023@donga.com
‘국경 인근에서 카렌족(소수민족)과 정부군 충돌.’ ‘군인이 이웃집 사람과 다툼 끝에 총기로 살인.’

미얀마 시내 가판대에서 파는 신문들에는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얀마 시민 중 적지 않은 사람은 이 같은 뉴스를 알고 있다.

11일 미얀마 시내의 한 신문가판대. 한 남자가 “진짜 뉴스를 달라”고 말하자 가판대 주인이 남자의 얼굴을 살펴본 뒤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신문 속에 끼워 건넸다. 미얀마 민간 언론들이 정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몰래 인쇄한 이 종이에는 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지만 정부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진짜 뉴스들이 있었다. 미얀마는 지금도 모든 신문이 발간 전 정부의 검열을 받아야만 한다.

정부의 단속을 피해 진짜 뉴스가 돌아다니는 곳은 또 있다. 기자가 찾은 한 현지인의 집에선 위성방송 ‘버마 민주주의의 목소리(DVB·Democracy Voice of Burma)’가 나오고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송출되는 이 방송은 정부가 관할하는 지상파 방송에선 다루지 않는 군대 문제, 북한과 중국 소식 등을 전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예전엔 낯선 사람(기자)과 함께 이 방송을 보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며 “DVB는 진짜 뉴스”라고 강조했다. 기자가 방문한 10일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지부 확대 소식과 양곤의 전기료를 인하하라는 1인 시위 현장 등이 전파를 탔다.

진짜 뉴스를 보고 듣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기존 언론들도 정부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판대에 진열된 신문들의 1면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사진, 보궐선거로 들뜬 국민들의 이야기로 도배된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또 검열을 피해 표현을 약간 바꾸기도 한다. ‘물가가 크게 오른다’를 ‘물가가 변할 것이다(change)’라고 쓰고,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내에 전기가 끊긴다’는 ‘오후 5시부터 오전 6시까지 전기가 들어온다’라고 쓰는 식이다.

또 민간 언론사도 일간지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얀마엔 현지어 신문 2종과 영자지 1종 등 3종의 일간지가 있는데 모두 정부에서 발간한다. 민간 언론은 주간 신문만 낼 수 있으며 인쇄 이틀 전엔 늘 검열을 받아야 한다. 주간지 ‘뉴데이뉴스’ 기자 우 센 틴글레 씨(36)는 “민간 일간지 도입은 검열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론 언론의 자유를 불러올 것”이라며 “쉽진 않겠지만 언젠간 이뤄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강은지 기자
해직 언론인인 지아 씨(32)는 “아직도 군부를 비판할 수 없는 등 검열법은 그대로지만 정부의 태도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며 “탄압이 극심할 때도 몰래 기사를 내보냈는데 지금 이런 인터뷰는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지아 씨가 다니던 언론사는 스님들이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위해 들고 일어난 ‘사프란 혁명’을 기사화해 2007년 정부에 의해 폐간됐다.

수치 여사도 “국민들이 국내 언론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를 하며 그 결과가 이행되는지를 지켜볼 수 있도록 언론자유 신장을 위한 노력에 힘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양곤에서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미얀마의봄#아웅산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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